ⓒ 그림책『고향의 봄』그림 김동성(2013년,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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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문학관 자료실의 기사자료입니다. 이원수선생님과 고향의봄기념사업단 관련한 기사입니다.

울긋불긋 꽃대궐…마산‘고향의 봄길’은 꿈길… / 2015.04.07 헤럴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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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원수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335회 작성일 15-04-1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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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정겨운 ‘가고파 꼬부랑길’
언덕위 집들 저마다 한폭의 그림
지난 시절 삶의 고단함도 그대로
이원수 ‘고향의 봄’ 꽃대궐 배경지
 추상미술 선구자 김종영 생가엔
갖가지 꽃들 너른마당에 가득


2010년 마산과 창원, 진해가 합쳐져 창원시가 됐지만 도시의 이미지는 여전히 셋이 제 각각이다. 한 때 수출산업의 첨병으로 화려했던 마산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지금 마산은 쇠락한 도시로 여겨질 법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마산의 명동’ 창동을 비롯, 오동동, 추산동, 성호동, 소답동 등 동네에서 동네로 이어진 길들을 걷다보면 도시가 새로운 모습으로 꿈틀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마을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부림시장 떡볶이 가게 아주머니, 어시장 자판대의 할머니는 사진찍기 좋은 포즈를 취하고, 빵가게 아주머닌 연신 새로 나온 빵, 인기있는 빵을 권하느라 바쁘다. 무엇보다 마산은 우리 정서의 원형질이랄 동요 ‘고향의 봄’이 태어난 곳이고, 한국 근대미술의 한 축이 형성된 곳이다.





▶문신미술관에서 꼬부랑벽화마을까지=좌우 완벽한 대칭으로 유명한 조각가 문신(1923~1995)의 작품이 고스란히 보관된 문신미술관은 마산만이 내려다보이는 햇살 가득한 추산동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일본 규슈에서 태어난 문신은 4살부터 15살 때까지 마산에서 보냈다. 일본 유학과 귀국, 작품 활동 등을 거쳐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20년 동안 그곳에서 활동한 문신은 1980년 영구 귀국, 늘 눈에 선했던 고향 바다가 한 눈에 바라다뵈는 언덕에 터를 잡는다. 마산은 그에게 정신적 고향이자 영혼의 안식처였다. 그는 미술관짓기에 팔을 거둬붙였다.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팔아 돈이 생기면 그때 그때 한 뼘씩 미술관을 지어나갔다. 그렇게 미술관을 완성하는데 14년이 걸렸다. 그는 미술관의 구조는 물론 옹벽과 야외마당까지 모두 일일이 디자인하고 대리석을 직접 잘라 붙였다. 옹벽에 그가 기울인 애정은 특별했던 듯 싶다. 제각각 모양의 돌을 디자인하고 그에 맞게 돌을 잘라 붙인 벽은 그 자체가 작품이다.





미술관 현관 앞에서 관객을 맞는 첫 작품은 그의 대표작 ‘화(和)’다. 유리 거울 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레스 스틸 표면에는 주위의 전경이 일그러져 비쳐진다. 1988년작인 이 작품은 그동안 주 재료로 써온 브론즈에서 벗어나 스테인레스 스틸을 사용한 첫 작품이다. 여기에는 스토리가 전한다. 문신의 집 밑에 추성공업사라는 철물점이 있었다. 문신과 공업사 주인은 격의 없이 형,아우처럼 지내게 됐는데 어느날 문신의 작품을 보던 공업사 주인이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하면 예쁘겠다고 한마디 했다. 문신은 한번도 이를 써 본 적이 없없다. 당시 스테인레스 스틸은 고가인데다 다루기가 힘들어 재료로 쓰지 않았다. 문신은 그의 제안에 마음이 동해 그와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표면을 매끄럽고 거울처럼 빛나게 닦아내는 데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기계로 하는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문질러 광을 내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국내 스테인레스 스틸 작품의 원조다. 문신미술관은 터를 잡을 때만 해도 마산 포구까지 한눈에 내려오는 시원한 경관을 자랑했지만 아파트와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문신이 애시당초 그렸던 전경의 그림과는 다소 멀어졌다. 문신미술관 아래 쪽에는 또 하나의 미술관이 있다. 작품의 원형이 된 석고원형을 그대로 보관한 원형미술관이다. 유리 전시공간 안에 보관된 석고원형들은 부드러우면서 차가운 그 자체로 순수하고 완벽하고 독특한 형태를 뽐내고 있다.





문신미술관을 나와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걷다보면 성호동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이 나온다. 가고파의 고향, 마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꾸민 마을이다. 언덕 위 집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저마다 한폭의 그림이 되어 있다. 축대 위에 그려진 벽화는 무학산 위치에서 바라보는 마산만의 풍경을 파노라마식으로 펼쳐놓았다. 왼쪽으로부터 몽암다리를 배경으로 저도 연육교, 문신미술관, 벚꽃 핀 경화역 등 가볼 만한 명소들이 펼쳐진다, 청청한 소나무 그림을 지나면 아구골목이 있는 어시장, 갈매기가 노니는 마산항의 평화로운 이미지가 펼쳐진다. 빗물구멍이 갈매기의 입으로 형상화돼 먹이를 주는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오른쪽은 가포 유원지의 숲과 연계된 마산의 새로운 명물 마창대교를 바탕으로 의림사계곡과 어시장의 일상이 생동감있게 담겨 있다. 비탈진 꼬부랑길이 이어지는 골목골목에 자리잡은 집들은 예쁘게 단장했지만 가파른 길에는 지난 시절 삶의 고단함이 깔려있다. 매화향기 폴폴나는 매화나무 담벼락, 백년우물안을 들여다보는 옛 아낙네, 행복버스, 노인쉼터, 명상까페 등 골목길 여기저기서 소리가 쟁쟁 떠도는 듯 하다. 이 꼬부랑길 벽화의 특징은 원래의 지형지물을 있는 그대로 활용해 보는 재미를 주는데 있다.

꼬부랑길에서 한참 계단을 내려오면 임항선 철길과 만나게 된다. 폐선을 시민들이 걷기 좋은 꽃길로 만들어 놓은 이 철길을 걷다보면 아련한 기적소리와 함께 그리운 사람이 생각난다.

▶ ‘고향의 봄길’, 이원수의 길, 김종영의 집=마산 소답동은 예전 꽃동네로 유명했다. ‘고향의 봄’의 시인 이원수(1911~1981)는 15살에 이 시를 지으며 복숭아꽃, 살구꽃 가득했던 고향의 마을을 노래했다.

1926년 이원수가 ‘어린이’지에 ‘고향의 봄’을 발표했을 당시 살았던 동네는 마산 합포구 오동동 71번지. 당시 오동동 71번지는 지금의 오동동 71-1~4번지로 나뉘어져 있다. 이전 9살까지는 중동 559번지에 살았는데 이원수는 이곳에서 동문 밖 서당을 다니며 글을 배웠다. 창원 읍성은 당시에만 해도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 그 중 동문이 복원중이다.

‘고향의 봄’ 배경지이자 어린 시절을 보낸 창원초등학교부터 조각가 김종영의 생가까지 소답동 일대를 따라 ‘고향의 봄길’이 조성돼 있다. 고향의 봄길의 출발지 창원초등학교는 창원대도호부의 동헌이었던 평근당이 있었다. 이 옆에 객사가 있었는데 여기 있던 객사문은 1943년 창원 불곡사를 재건하면서 일주문으로 변형돼 세워져 있다. 창원초등학교를 돌아가면 이원수가 4세부터 6세까지 살았던 집 표지석과 복동샘을 만날 수 있다. 창원읍성에는 우물이 셋 있는데 지금 유일하게 남은 샘이다. 표지석을 지나 소답시장을 통과하면 이원수가 9살까지 살던 또 다른 집터가 나온다. 이원수는 이곳에서 동문밖 서당을 다녔다고 한다. 이 서당이 지금의 창원향교로 추정된다. 집을 지나 한창 복원준비중인 동문터, 소답떡방앗간을 지나면 이원수가 ‘고향의 봄’에서 그린 김종영의 생가 ‘꽃대궐’에 이른다.

이원수가 1980년 한 잡지에 ’고향의 봄‘을 쓰게 된 얘기를 털어놨다. “창원읍에서 자라며 나는 동문 밖에서 좀 떨어져 있는 소답이라는 마을의 서당엘 다녔다. 소답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읍내에서도 볼 수 없는 오래되고 큰 기와집의 부잣집들이 있었다. 큰 고목의 정자나무와 봄이면 뒷산의 진달래와 철축꽃이 어우러져 피고 마을 집 돌담 너머로 보이는 복숭아꽃 살구꽃도 아름다웠다. (중략)서당마을의 꽃들이며 냇가의 수양버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 . 그런 것들이 그립고 거기서 놀던 때가 한없이 즐거웠던 것 같았다.”

이원수가 노래했던 ‘꽃대궐’은 지금 남아있다.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의 생가다. 김종영의 소답동 생가는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200호로 지정돼 있다. 사랑채의 규모만으로도 이 집의 규모가 짐작이 될 정도다. 본채와 사랑채 사이에 지금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사랑채의 누각인 사미루(四美樓)는 중국식 마루 양식으로 이 집의 부와 권력을 알 만하다. 김종영의 증조부 김영규는 1901년 함안군수, 1902년 진남군수를 지냈다. 특히 생가 앞의 300년 넘은 느티나무의 위용은 입이 딱 벌어진다. 사랑채와 안채, 문간채 등으로 이뤄진 이 집은 높은 다락과 유리문, 출입구 상부의 채광을 겸한 환기창을 갖춘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너른 마당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었고 집 뒷담에도 대나무와 꽃나무가 둘러쳐 있으나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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