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에 담긴 양산의 역사와 문화/통도사·가야진사 등 곳곳 애틋한 전설 가득 - 경남도민일보 6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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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원수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421회 작성일 15-04-16 11:28본문
'양산'이라는 말 뒤에 '통도사'가 따라붙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양산에는 통도사IC가 별도로 있다. 통도사로 안내하는 시내 곳곳 이정표도 불편함 없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통도사에 대한 각별함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통도사 산내 암자만 19개며, 말사는 밀양 표충사·밀양 만어사·마산 정법사 등 경남에만 60개가 넘는다. 양산은 도내 지자체 가운데 지정문화재가 151개(국가지정 43개·도지정 78개·문화재자료 30개)로 가장 많다. 이 가운데 통도사에서 관리하는 것이 81개며, 말사까지 포함하면 100개 가까이 된다.
이를 두고 '통도사 없었으면 너무 심심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반대로 '통도사라는 대명사가 있었기에 그 외 것들은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실제 통도사 아닌 것에 눈 돌리면 두 가지 말 모두 수긍된다.
이곳 사람들은 지역 대표 인물로 신라 충신 박제상, 아동문학가 이원수를 거론한다. 그래도 그 흔적이 별스럽지 않다.
박제상(363~419)은 신라 눌지왕 때 충신이다. 상북면 소토리에는 생가·초상화·석비로 이뤄진 '박제상 유적 효충사(경상남도 기념물 제90호)'가 있다. 자동차가 겨우 들어갈 만한 마을 좁다란 길을 따라가면 너른 터에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과 크게 조화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사당 문도 잠겨 있어 그 기운을 느낄 틈이 부족하다.
애국가보다 많이 불린다는 동요 '고향의 봄' 노랫말을 만든 이원수(1911~1981) 흔적은 북정동 생가터, 교동 춘추공원 노래비 정도다.
혹자는 "박제상은 울산에, 이원수는 창원에 빼앗겼다. 양산은 문화콘텐츠를 많이 잃은 곳"이라고 말한다. 박제상 후손들이 한때 사당을 지으려 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고, 박제상 부인 망부석은 울산 울주군에 들어섰다. 이원수를 놓고도 이야기를 담아보려는 노력이 오랜 시간 있었으나, '이원수' 하면 '창원'이 더 떠올려지는 분위기다.
가야진사(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7호)는 삼국시대~조선시대에 낙동강 뱃길을 순조롭게 해달라며 제사 지내던 곳이다.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이곳 제당 역시 개방해 놓지 않아 낙동강과 마주하는 것으로 눈을 달래야 한다.
임경대는 최치원 선생이 낙동강 물에 비친 산 모습을 보고 마치 거울 같다며 시를 읊었다는 곳이다. 원동면 화제리 어느 산길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그 위치가 정확하지는 않다'는 단서가 달려있다.
눈을 조금 더 넓혀 자연에 시선을 고정하면 이곳 양산이 다시 보인다. 산·강·천이 저마다 장면을 만들어 배내골·내원사계곡·천성산·천태산·홍룡폭포 같은 8경을 선사한다.
이 가운데 천성산(922m)은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스님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해 모두 성인이 되게 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율 스님' '도롱뇽' 같은 단어도 함께 떠오른다. 천성산터널은 2010년 10월 개통했고, 지금은 명칭이 원효터널로 바뀌었다. 천성산은 20여 개 습지를 품에 두고 있다. 원형 보존이 가장 잘 돼 있었다는 밀밭늪은 조금씩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그것이 천성산터널, 아니 원효터널과 연관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보는 이들에 따라서는 천성산 습지는 변화된 게 없다고도 한다. 도롱뇽과 그 알을 봤고 못 봤고 역시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도심에서는 또 양산의 활력 넘치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해가 지면 양산타워·양산천상 구름다리·영대교와 음악분수가 이곳을 매혹적인 빛의 도시로 만든다.
두 마리 백조가 마주하는 양산천상 구름다리는 단지 아름다운 형상만 뽐내지 않는다. 양산이 신라와 가야 경계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사연을 담고 있다. 양산천은 신라·가야를 가르는 강이었는데, 신라 청년이 가야 여인을 만나려 천을 헤엄치다 불어난 물에 익사했다는 얘기가 남아있다. 이를 담아 누구나 천을 쉽게 건너도록 다리를 놓았고, 신라 청년·가야 여인은 다리 위 백조가 되어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다.
양산은 한편으로는 급속한 도시화·산업화에 매몰돼 있다 '환경'에 눈 돌린 흔적을 두고 있다. 160m 높이 양산타워는 자원회수시설(재활용되지 않는 가연성 폐기물 소각처리시설) 굴뚝을 활용해 만들었고, 수질정화공원은 하수종말처리장 터를 활용했다. 어곡동에는 도내 최초 상업용 풍력발전기 2기를 가동하고 있다. 높이가 70m며 지름 77m인 회전자가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있다.
양산에는 '경남·부산·울산 노동자 성지'도 있다. 하북면 답곡리 솥발공원묘역으로 노동운동의 아픈 역사가 잠들어 있다. 부산 구덕고에 몸담으며 전교조 합법화 투쟁 중 위암으로 숨을 거둔 고 신용길 선생이 1991년 이곳에 묻혔다. 이를 시작으로 경남·부산·울산에서 노동운동하다 명을 달리한 노동자 한 명 한 명 잠들면서, 2006년 지역 민중단체가 '영남권 열사묘역'으로 만들었다. 2007년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노동자통일대회'에서 북측대표단이 보슬비 속에 이곳을 찾아 배달호 열사 등 민주노동열사 8기에 참배하기도 했다.
양산에는 통도사IC가 별도로 있다. 통도사로 안내하는 시내 곳곳 이정표도 불편함 없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통도사에 대한 각별함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통도사 산내 암자만 19개며, 말사는 밀양 표충사·밀양 만어사·마산 정법사 등 경남에만 60개가 넘는다. 양산은 도내 지자체 가운데 지정문화재가 151개(국가지정 43개·도지정 78개·문화재자료 30개)로 가장 많다. 이 가운데 통도사에서 관리하는 것이 81개며, 말사까지 포함하면 100개 가까이 된다.
이를 두고 '통도사 없었으면 너무 심심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반대로 '통도사라는 대명사가 있었기에 그 외 것들은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실제 통도사 아닌 것에 눈 돌리면 두 가지 말 모두 수긍된다.
이곳 사람들은 지역 대표 인물로 신라 충신 박제상, 아동문학가 이원수를 거론한다. 그래도 그 흔적이 별스럽지 않다.
박제상(363~419)은 신라 눌지왕 때 충신이다. 상북면 소토리에는 생가·초상화·석비로 이뤄진 '박제상 유적 효충사(경상남도 기념물 제90호)'가 있다. 자동차가 겨우 들어갈 만한 마을 좁다란 길을 따라가면 너른 터에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과 크게 조화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사당 문도 잠겨 있어 그 기운을 느낄 틈이 부족하다.
애국가보다 많이 불린다는 동요 '고향의 봄' 노랫말을 만든 이원수(1911~1981) 흔적은 북정동 생가터, 교동 춘추공원 노래비 정도다.
혹자는 "박제상은 울산에, 이원수는 창원에 빼앗겼다. 양산은 문화콘텐츠를 많이 잃은 곳"이라고 말한다. 박제상 후손들이 한때 사당을 지으려 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고, 박제상 부인 망부석은 울산 울주군에 들어섰다. 이원수를 놓고도 이야기를 담아보려는 노력이 오랜 시간 있었으나, '이원수' 하면 '창원'이 더 떠올려지는 분위기다.
가야진사(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7호)는 삼국시대~조선시대에 낙동강 뱃길을 순조롭게 해달라며 제사 지내던 곳이다.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이곳 제당 역시 개방해 놓지 않아 낙동강과 마주하는 것으로 눈을 달래야 한다.
임경대는 최치원 선생이 낙동강 물에 비친 산 모습을 보고 마치 거울 같다며 시를 읊었다는 곳이다. 원동면 화제리 어느 산길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그 위치가 정확하지는 않다'는 단서가 달려있다.
눈을 조금 더 넓혀 자연에 시선을 고정하면 이곳 양산이 다시 보인다. 산·강·천이 저마다 장면을 만들어 배내골·내원사계곡·천성산·천태산·홍룡폭포 같은 8경을 선사한다.
이 가운데 천성산(922m)은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스님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해 모두 성인이 되게 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율 스님' '도롱뇽' 같은 단어도 함께 떠오른다. 천성산터널은 2010년 10월 개통했고, 지금은 명칭이 원효터널로 바뀌었다. 천성산은 20여 개 습지를 품에 두고 있다. 원형 보존이 가장 잘 돼 있었다는 밀밭늪은 조금씩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그것이 천성산터널, 아니 원효터널과 연관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보는 이들에 따라서는 천성산 습지는 변화된 게 없다고도 한다. 도롱뇽과 그 알을 봤고 못 봤고 역시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도심에서는 또 양산의 활력 넘치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해가 지면 양산타워·양산천상 구름다리·영대교와 음악분수가 이곳을 매혹적인 빛의 도시로 만든다.
두 마리 백조가 마주하는 양산천상 구름다리는 단지 아름다운 형상만 뽐내지 않는다. 양산이 신라와 가야 경계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사연을 담고 있다. 양산천은 신라·가야를 가르는 강이었는데, 신라 청년이 가야 여인을 만나려 천을 헤엄치다 불어난 물에 익사했다는 얘기가 남아있다. 이를 담아 누구나 천을 쉽게 건너도록 다리를 놓았고, 신라 청년·가야 여인은 다리 위 백조가 되어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다.
양산은 한편으로는 급속한 도시화·산업화에 매몰돼 있다 '환경'에 눈 돌린 흔적을 두고 있다. 160m 높이 양산타워는 자원회수시설(재활용되지 않는 가연성 폐기물 소각처리시설) 굴뚝을 활용해 만들었고, 수질정화공원은 하수종말처리장 터를 활용했다. 어곡동에는 도내 최초 상업용 풍력발전기 2기를 가동하고 있다. 높이가 70m며 지름 77m인 회전자가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있다.
양산에는 '경남·부산·울산 노동자 성지'도 있다. 하북면 답곡리 솥발공원묘역으로 노동운동의 아픈 역사가 잠들어 있다. 부산 구덕고에 몸담으며 전교조 합법화 투쟁 중 위암으로 숨을 거둔 고 신용길 선생이 1991년 이곳에 묻혔다. 이를 시작으로 경남·부산·울산에서 노동운동하다 명을 달리한 노동자 한 명 한 명 잠들면서, 2006년 지역 민중단체가 '영남권 열사묘역'으로 만들었다. 2007년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노동자통일대회'에서 북측대표단이 보슬비 속에 이곳을 찾아 배달호 열사 등 민주노동열사 8기에 참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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