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고향의 봄』그림 김동성(2013년,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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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프로 성악가들이 '고향의 봄' 부르던 날 / 2015.1.8 재외동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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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원수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310회 작성일 15-04-1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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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프로 성악가들이 ‘고향의 봄’ 부르던 날…”스페인 동포 지휘자 임재식의 꿈과 비전

허겸 기자 | khur@dongponews.net



 범상치 않다. 악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마뜩찮은 듯 미간을 찌푸릴 것만 같다. 마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 분)처럼 시니컬한 냉소로 단원들을 향해 ‘X덩어리들!’이라고 일갈할 것도 같다.

 그런데 뜻밖이다. 흡사 ‘아줌마 파마’로도 보여 지는 헤어스타일이 쏠쏠한 관심을 유발한다. 예상 밖의 부드러운 반전 미소는 매력을 더한다. 재치 있는 입담은 깨알재미를 더하고 강단 있는 음성엔 진중함이 깊게 묻어난다.

 “아직도 잊지 못해요. 스페인 프로 성악가들이 ‘고향의 봄’을 합창하던 그날의 감동을요.”

 스페인 밀레니엄 오케스트라 합창단의 단장 겸 지휘자를 맡고 있는 동포 음악가 임재식씨는 “바로 이것이라는 번뜩이는 영감이 떠올랐다”고 그 시절을 회고했다.

 “제가 스페인을 떠나거나 죽어도, 세월이 더 많이 흘러도 한국의 노래를 듣고 그 장단에 흥얼거리는 스페인 사람들이 있다면 성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날이었습니다.”

 임 단장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프로 성악가 한 명에게 우리의 노래를 들려줬다. 스페인 성악가가 또렷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따라 부를 때 큰 가능성을 엿봤다고 했다.


 서양인들에게 한국의 가락을 전수한 뿌듯함 속에 지내던 어느 날 그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익숙한 노랫말을 듣곤 깜짝 놀란다.

 한 걸음에 내달려 들어간 곳에선 심장이 멎을 듯 벅찬 감격에 빠진다. 동료들이 ‘고향의 봄’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임 단장을 발견하곤 겸연쩍은 듯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들에게 물었어요. 왜 나를 초대하지 않았냐고요. 그런데 돌아온 답은 ‘창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내심 기뻤습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해줬어요.”

 플라시도 도밍고에 흠뻑 매료돼 스페인 유학길에 오른 지도 햇수로 33년이 됐다. 강산이 3번 바뀌고도 남음직한 지난한 시간이었다.

 어느덧 머리 위에는 세월의 더께가 덧칠해졌다.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빗어 넘긴 머리가 잘 어울릴 법했던 그도 이젠 희끗한 머리카락의 중년 신사가 됐다.

 “우연히 계기가 닿아 처음 한국 노래를 알려줬던 친구를 무려 28년 만에 만났어요. 모티브가 되어준 그 친구가 그 시절 가르쳐준 노래를 기억했고, 악보까지 갖고 있어서 더욱 놀랐었죠.”
 

 이역만리 땅에서 듣는 고국의 음악은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는다’는 말이 있다.

 어렵게 구한 소주 한 잔으로 ‘망향의 한’을 달랠 때 어디선가 고국의 노래 가락이 들린다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듯한 격한 반가움(?)에 휩싸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물며 서양인들이 부르는 한국의 민요를 듣는다면 그때의 감흥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면 금상첨화다. 강렬한 비트의 K팝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전통 사물놀이와는 또 다른 면모를 과시한다.

 임재식 단장의 비전이 여기에 있다. 서양인 합창단과 서양인 오케스트라, 이에 더해 서양인 지휘자가 만드는 한국의 선율을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 동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프로젝트 정도로 명명할 수 있겠다.

 “아무리 (외국에서)오래 살아도 이방인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동포들이 무척 많습니다. 변두리에서 주변인으로 지내면서 느끼는 우리네 삶의 애환을 달래는 묘수가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이죠.”

 스페인 밀레니엄 오케스트라 합창단은 지난 1999년 임 단장이 직접 국영방송 RTVE 합창단원 가운데 25명을 뽑아 창단했다. 임 단장을 제외한 단원 모두가 스페인인이다.

 합창단은 스페인에서 나날이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스페인 국영 방송국 RTVE는 합창단의 공연을 전국에 실황중계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정기연주회에선 스페인 음악인 300명이 ‘애국가’를 제창, 동포들의 심금을 울렸다.

 공연에는 스페인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에레스뚜(Eres tu)’가 등장한다. 클래식 연주도 이어진다. 변화와 반전의 묘미를 담아내기 위함이다. 밀양 아리랑, 경복궁 타령 등 한국의 민요에다 카르멘 서곡,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등 오페라의 음악적 색채가 가미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미 작은 열매들이 숱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제게서 배운 프로 성악가들이 아마추어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아리랑’을 가르치고 ‘고향의 봄’을 전수하고 있거든요.”

 우리 음악을 알리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그에겐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다. “한인 동포들이 있는 곳이면 미국 일본 호주 중국 북한 어디든 달려가고 싶습니다.”

 임 단장의 공연은 고국에 대한 향수와 정신적, 육체적 고단함을 희석하는 색다른 방법일 수 있다. 그의 소박한 꿈이 성사될지 동포 음악계가 주목하고 있다.

 허겸 기자 khur@dongp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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