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어나는 '고향의 봄.' / 군산미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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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원수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327회 작성일 15-04-16 11:18본문
다시 피어나는 ‘고향의 봄’ 군산미래신문 2011-12-12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국민동요로 널리 불리어지고 있는 아동문학가 이원수님의‘고향의 봄’노래이다. 언제 들어도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련하게 젖어오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노랫말이다.
지난 11월 23일 이원수문학관에 따르면 이원수 선생의 유족 이정옥(둘째 딸) 씨는 22일 창원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종달새, 다시 날다’에서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 공식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원수 님은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동시, 자유시, 수필 등 모두 다섯 편의 친일 작품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기관지 《반도의 빛 (半島の光)》에 발표했다.
동시에서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전할 지원병을 위해 후방에서 병역봉공을 다해야 한다고 했으며, 자유시에서는 농업보국에 정성을 쏟아 총후봉공의 완수를, 수필에서는 어린이들이 하루바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이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
딸 이정옥 씨는 “아버지가 친일작품을 썼을 당시, 자식들에게는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으시고 한글을 가르치시곤 하셨는데 그런 글을 쓰셨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며 “나름대로 존경해 하시던 분들이 굉장히 상처입고 배신감도 느끼신 걸 이해하고 모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기만 하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참 아름답고 용기있는 사죄이다. 남들처럼 숨기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죄를 그 자손이 인정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 누가 용서할 수 없다고 돌을 던지겠는가.
우리고장 출신의 소설가 채만식은 해방 후 ‘민족의 죄인’이라는 수필형식의 자전적 소설에서 자신의 친일 작품에 대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성찰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작가적 양심의 표현일 것이다.
대문호로 인정받고 있는 미당 서정주 시인은 그의 고향 고창에 그의 문학적 업적을 추앙하는 행사가 크게 벌어지고 있으나 그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도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그의 문학을 연구하고 따르는 문인들이나 가족들도 친일행적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조명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미당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문학사에서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문인가운데 42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 이들은 이미 고인이 되어 미처 자신의 행적에 대해 양심적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진 상황이기에 그 후손과 가족 그리고 그의 문학관을 따르는 문인들이 함께 역사 앞에 사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의 문학에 대한 이념적 벽을 낮추고 화해와 용서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문학적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는 피맺힌 사연들이 아직도 원한이 되어 민족의 상처로 응어리져 있다. 을사늑약으로 나라와 민족의 주권을 일본에게 팔아넘긴 친일매국인사들은 그 댓가로 권력과 부를 누리고 해방이후에는 오히려 건국공신으로 변신하여 권세를 유지하고 자손들까지 영화와 재산을 누리는 경우도 있으니 어찌 역사가 그 죄를 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늦게나마 묻혀있는 사료들을 조사 발굴하여 용서와 화해를 구하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다짐하려는 민족사적 노력이 있었으나 관련자들과 그 후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상황논리를 들어 회피하려 하고 오히려 다른 업적과 명분을 들어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는 철면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찌 친일행위자 뿐인가. 조국근대화니 정의사회구현이니 하는 대의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휘두르며 반대 세력을 무참히 죽이고 핍박해온 비민주 세력들 또한 역사는 참회를 요구하고 있으나 일말의 성찰은 커녕 경제발전 등의 업적으로 호도하여 오히려 새로운 권력을 형성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과연 역사는 진실을 묻고 갈 수 있는 것인가.
비록 그 대의가 시대적 사명이었다 할지라도 실천하는 방법과 수단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비민주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이어서 단 한명의 국민에게라도 위해를 가하였다면 이제라도 역사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성찰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용서와 화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우리 역사를 생명력을 갖고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중기 시인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국민동요로 널리 불리어지고 있는 아동문학가 이원수님의‘고향의 봄’노래이다. 언제 들어도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련하게 젖어오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노랫말이다.
지난 11월 23일 이원수문학관에 따르면 이원수 선생의 유족 이정옥(둘째 딸) 씨는 22일 창원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종달새, 다시 날다’에서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 공식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원수 님은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동시, 자유시, 수필 등 모두 다섯 편의 친일 작품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기관지 《반도의 빛 (半島の光)》에 발표했다.
동시에서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전할 지원병을 위해 후방에서 병역봉공을 다해야 한다고 했으며, 자유시에서는 농업보국에 정성을 쏟아 총후봉공의 완수를, 수필에서는 어린이들이 하루바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이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
딸 이정옥 씨는 “아버지가 친일작품을 썼을 당시, 자식들에게는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으시고 한글을 가르치시곤 하셨는데 그런 글을 쓰셨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며 “나름대로 존경해 하시던 분들이 굉장히 상처입고 배신감도 느끼신 걸 이해하고 모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기만 하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참 아름답고 용기있는 사죄이다. 남들처럼 숨기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죄를 그 자손이 인정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 누가 용서할 수 없다고 돌을 던지겠는가.
우리고장 출신의 소설가 채만식은 해방 후 ‘민족의 죄인’이라는 수필형식의 자전적 소설에서 자신의 친일 작품에 대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성찰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작가적 양심의 표현일 것이다.
대문호로 인정받고 있는 미당 서정주 시인은 그의 고향 고창에 그의 문학적 업적을 추앙하는 행사가 크게 벌어지고 있으나 그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도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그의 문학을 연구하고 따르는 문인들이나 가족들도 친일행적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조명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미당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문학사에서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문인가운데 42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 이들은 이미 고인이 되어 미처 자신의 행적에 대해 양심적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진 상황이기에 그 후손과 가족 그리고 그의 문학관을 따르는 문인들이 함께 역사 앞에 사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의 문학에 대한 이념적 벽을 낮추고 화해와 용서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문학적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는 피맺힌 사연들이 아직도 원한이 되어 민족의 상처로 응어리져 있다. 을사늑약으로 나라와 민족의 주권을 일본에게 팔아넘긴 친일매국인사들은 그 댓가로 권력과 부를 누리고 해방이후에는 오히려 건국공신으로 변신하여 권세를 유지하고 자손들까지 영화와 재산을 누리는 경우도 있으니 어찌 역사가 그 죄를 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늦게나마 묻혀있는 사료들을 조사 발굴하여 용서와 화해를 구하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다짐하려는 민족사적 노력이 있었으나 관련자들과 그 후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상황논리를 들어 회피하려 하고 오히려 다른 업적과 명분을 들어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는 철면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찌 친일행위자 뿐인가. 조국근대화니 정의사회구현이니 하는 대의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휘두르며 반대 세력을 무참히 죽이고 핍박해온 비민주 세력들 또한 역사는 참회를 요구하고 있으나 일말의 성찰은 커녕 경제발전 등의 업적으로 호도하여 오히려 새로운 권력을 형성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과연 역사는 진실을 묻고 갈 수 있는 것인가.
비록 그 대의가 시대적 사명이었다 할지라도 실천하는 방법과 수단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비민주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이어서 단 한명의 국민에게라도 위해를 가하였다면 이제라도 역사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성찰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용서와 화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우리 역사를 생명력을 갖고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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