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고향의 봄』그림 김동성(2013년,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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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문학관 자료실의 기사자료입니다. 이원수선생님과 고향의봄기념사업단 관련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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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고향의봄축제 열려 - 4월 5일 창원일보
창원과 만개한 봄꽃이 `함께 어우러진다` 창원 대표 봄 축제 `제21회 고향의 봄 축제` 7~21일 용지공원ㆍ성산아트홀ㆍ천주산 일대서 정종민 기자 (기사입력: 2012/04/05 15:27) 창원의 대표 봄 축제인 `제21회 고향의 봄 축제`가 7일부터 21까지 용지공원과 성산아트홀, 천주산 일대에서 펼쳐진다. 창원의 대표 봄 축제인 `제21회 고향의 봄 축제`가 오는 7일부터 21까지 용지공원과 성산아트홀, 천주산 일대에서 펼쳐진다. 고향의 봄 축제는 한국 아동 문학의 거목 동원 이원수 선생이 창원에서의 어린시절을 그리워하며 쓴 동시 `고향의 봄`을 테마로 한 축제다. 이 축제는 고향의 봄 창작 배경지가 창원임을 널리 알리고,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등 고향의 봄 노랫말 구석구석에 담겨 있는 아름답고 따뜻한 고향의 봄 정서를 시민들과 함께 공감하고자 펼치는 시민대화합의 축제다. 창원예총과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 MBC경남, 천주산진달래축제위원회로 구성된 고향의봄축제위원회는 올해도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MBC경남은 7일 MBC경남홀에서 어린이들에게 동요를 통해 맑고 깨끗한 정서를 심어 주기 위해 전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제14회 고향의봄 창작동요제`를 개최한다. 창원예총에서는 14일부터 21일까지 국악, 문학, 미술, 연극 등 예총 산하 8개 지부 회원들이 직접 나서 △시민 학생 미술ㆍ서예 실기대회 △고향의 봄 백일장 △전국무용경연대회 △창원전국사진공모전 입상작 전시회 △창원시민가요제 △연극공연 떳다 방자 △신춘음악회 △신나는 효잔치 공연 등 `2012 고향의 봄 예술제`를 준비했다.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에서는 고향의 봄 창작 86주년을 기념해 14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성산아트홀 야외놀이마당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창원 어린이 고향의 봄 잔치`를 마련했다. 이 잔치에는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 꾸미는 동시콘서트 `동시야 놀자` △아동문학가 이상교와 함께하는 작가와의 만남 및 작가의 친필시화 사인회 △고향의 봄 목걸이 △패션배지 △손거울 만들기 등 `고향의 봄 테마 체험프로그램`을 연다. 특히 어린이 벼룩시장인`팔go! 사go!`, 호떡 손수 만들어 먹기 등의 참여형 행사가 주목된다. 또한 2부 축하 공연에서는 소답초딩 밴드공연 △어린이 가야금 연주 △북어패의 재활용 악기 공연 △인기 동화캐릭터의 요절복통 댄스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동심의 세계에 푹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주산진달래축제위원회에서는 15일 오전 9시부터 천주산 정상부에 붉게 물든 진달래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오는 수많은 상춘객들을 위해 달천계곡 일원에서 개막 산신제를 시작으로 백일장, 인기가수 공연, 산악 마라톤 대회 등을 연다. 한편 올해 행사는 최근 몇 년 동안 봄꽃의 개화 시기가 늦어지는 것을 고려해 행사 개최 시기를 약 일주일 정도 연기했으며 그중에서도 14일(토)과 15일(일)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행사를 집중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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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의창구 의창동 트위터 '꽃대궐 차린 동네' 개설
창원시 의창구 의창동 트위터 '꽃대궐 차린 동네' 개설 2012년 03월 12일 (월) 16:42:28 강우권 기자 familytime24@hanmail.net (창원=뉴스웨이 경남취재본부 강우권 기자) 창원시 의창구 의창동(동장 오문택)에서는 12일 의창동 트위터 ‘꽃대궐 차린 동네(ECvillage)’ 정식 오픈행사를 시작으로 주민들과 신속하고 적극적인 쌍방향 소통의 문을 열었다. 의창동은 트위터를 ‘시정소식 홍보, 재난 및 비상사태 전파, 스마트폰을 이용한 즉각적인 주민불편 신고, 동네 역사와 문화에 관한 정보 안내, 기본이 바로 선 창원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해 주민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문을 열게 할 것이다. 지난 2월 27일에는 전문 강사를 초청해 주민들과 직원을 대상으로 트위터 활용교육을 실시했으며, 한 달간의 내부 시범운영 기간을 거쳐 이날 정식 오픈하게 되었다. 정식오픈 행사를 통해 의창동 트위터 운영 개시와 활용방향에 대해 홍보했으며, 트위터를 어려워하는 주민들을 위해 가입 및 팔로우 도우미, 스마트폰 트위터 어플 설치, 트위터 활용 가이드 자료를 배부했다. 의창동 트위터의 이름으로 붙여진 ‘꽃대궐 차린 동네’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원수의 동시 ‘고향의 봄’에 나오는 의창동을 상징하는 구절이며, 주민들과 행정이 함께 소통하는 아름다운 공간을 의미한다. 오문택 의창동장은 “우리 동은 주민편의 개선과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책을 계획하고 있으며, 의창동 트위터 ‘꽃대궐 차린 동네’도 그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다. 앞으로 점차 변화해가는 의창동의 모습을 지켜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우권 기자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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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중앙아시아에 뿌려진 '고향의 봄' 한소절 / 경남도보 580호 / 윤은주(수필가) 2012.02.23
2012년 1월 24일부터 2월 4일까지 10박 12일의 긴 여정동안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즈스탄과 카자흐스탄에 한국어와 문학봉사단의 일원으로 다녀왔다.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정대 교수를 단장으로 정일근 시인, 고향의 봄 기념회 장진화 국장과 학생들이 함께 한 이번 봉사단의 여정을 통해 중앙아시아에 불고 있는 한국 열풍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향을 떠난 고려인들의 삶과 애환을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들 지역은 우리 역사 속에서 힘이 약한 나라의 국민으로 고통과 아픔을 겪었던 고려인들이 살아가는 곳이어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키르키즈스탄에는 지금 바야흐로 한국 열풍이 불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 '겨울 연가'에 반하여 15시간 버스를 타고 수도로 와서 한국어학과에 다니는 한 여학생의 꿈은 '한국에 가보는 것'이라 했다. 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강의는 배우고자하는 열의와 한국에 대한 동경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설날을 소재로 한 이억배의 그림동화 '손 큰 할머니의 만들기' 와 김유정 소설 '봄봄'그리고 정지용의 시 '얼굴'등으로 진행된 수업은 학생들의 웃음과 공감 속에 유쾌하게 끝났다. 김정대 교수의 '한국어의 정체성', 정일근 교수의 '시인이 되는 아홉 가지의 비망록'강의는 그곳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수준 높은 강의로 많은 한국어 교사들과 교민들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고향의 봄'행사는 웃음으로 시작해 숙연한 눈물로 끝을 맺었다. 동원 이원수 선생의 시와 노래, 그리고 동화 등으로 꾸며진 행사의 끝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둥글게 손을 작고 서서 부른 '고향의 봄'은 이 세상 어떤 노래보다 장엄하고 감동적이었다. 키르키즈스탄의 행사에 참석했던 이스베틀라나 할머니는 시 한편을 읽다가 격정에 목이 매어 '왜 이제야 왔느냐?'며 원망 아닌 원망을 하셨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한국 교육원 행사장에서는 뜻밖에 광주 출신의 망명 음악가 정추 선생을 만났다. 역사의 격동기에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형을 따라 월북했던 선생은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모스크바 음악대학에 진학했으나 김일성에 반대하여 추방당해 오늘날까지 망명객으로 살고 있다. 건네주신 명함에 '조선민주 통일 구국 전선 의장'이라는 직함이 찍혀 있었다. 구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의 일정에 함께 해주신 정추 선생은 만날 때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조국과 민족, 통일을 염려하여 오히려 우리를 숙연케 만드셨다. 혹자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버린 천재음악가'라 정추 선생을 칭했지만 내가 만난 정추 선생은 그저 고향을 그리워하며 밤낮 자식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은 부모처럼 자나깨나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푸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셨다. 나의 손을 꼭 잡고 눈물로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시는 정 선생의 모습에서 우리들은 더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을 만들어 먼 곳에서 고향을 그리워하시는 분들에게 선물하겠노라 다짐하였다. 2011년 이병주 문학상 수상자인 최석 시인의 집에 초대되어 맛있는 김치찌개로 만찬을 즐긴 후 봉사단의 공식 행사는 끝이 났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린다는 혹한도, 끝없이 내려 쌓이던 눈도 '고향의 봄'을 중앙아시아에 옮겨 놓으려는 우리들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이제 중앙아시아는 더 이상 멀고 먼 동토가 아니었다. 거리 곳곳에 눈에 띄는 한국 연예인들의 포스터와 인기 있는 한국 마켓, 한국에 와보는 것을 최고의 꿈으로 삼고 한국어로 꿈을 만드는 이들이 있는 우리의 이웃이었다. 그 땅에 뿌린 노래 한 자락, 글 한 편이 봄의 나무처럼 싹을 틔우고 무성한 열매를 맺도록 우리 모두 더욱 힘써 가꾸어야 할 미래의 우리 고향이었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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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생각에 관한 기사자료 / 충청매일 2012년 2월16일
화류계에서도 애창됐던 ‘오빠생각’ ‘오빠생각’은 과거엔 모르는 이가 없던 유명한 동요이다. 박태준이 곡을 붙여 노래가 유행함으로써 널리 유명해졌다. 이 노래는 1925년 어린이 잡지에 실린 11세 소녀 최순애의 동시에 박태준이 곡을 붙인 것이다. 훗날 아동문학가가 된 최순애는 ‘고향의 봄’으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이원수씨의 부인이 되었다. 이 ‘오빠생각’과 박태준에 관한 이야기가 ‘계명 100년사’속에 있었다. 동요 작가 김성도 교사가 1956년에 ‘계성과 동요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인데 박태준과 직접 관련된 부분을 간추려 소개한다. 계성과 동요운동 교사 김성도 계성은 한국초창기 동요운동에 특수한 공로가 있다고 본다. 무릇 동요운동에 있어서는 두 가지 방면이 있다고 본다. 문예작품으로서의 동요 창작과, 이 동요에 곡을 붙이는 것이 그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3대 동요 시인을 말할 때, 윤석중, 윤복진, 박영종(목월)을 꼽는다. 그런데 그중의 윤복진, 박영종 두 시인이 바로 계성 출신인 것이다. 그 중 윤복진은 행방을 알 수 없고, 박영종은 시로 전향하였으나, 그들의 공적은 동요 사상에 엄연히 빛나는 것이다. 다음, 곡으로서의 동요운동에는 박태준 박사의 공이 지대하였음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뜸북 뜸븍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울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이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주: 이 글에는 2절은 없다. 필자가 덧붙인 것이다.) 이 뜸북새의 노래(‘오빠생각’)야말로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다투어 부르던 동요이다. 그러니 벌써 30년 전이다.(주: 이 글이 쓰여진 1956년부터 30년 전 즉 1920년대) 한국에 노래가 없어 굶주렸던 그 때에 이것이 나오자 요원의 불같이 퍼졌다. 이 당시 같이 불리던 것은 윤극영씨의 ‘반달’이 있었을 따름이다. 이즈음의 사람들은 동요에만 굶주린 것이 아니라, 노래에 굶주렸던 터이라 ‘반달’과 ‘뜸북새’는 화류계까지 퍼져 애창되었었다. 이 ‘뜸북새’의 작곡자가 바로 계성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박태준 박사이다. 당시 박 선생은 서양 가곡집을 내었고, 그 말미에 박태준 작곡을 부록으로 넣어서 가곡 운동에도 선구자적 공을 세우신 분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공은 그의 동요 작곡에 있었다. 박태준 선생은 학교 수업을 필하면 강당 피아노 앞에서 작곡을 하였다. 강당 문을 꼭 잠그시고,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면서 오선지에 곡을 그려 넣던 것은 지금도 눈에 환히 보이는 듯하다. 작곡이 되면 이어 등사가 되어 음악시간에 학생들에게 배부된다. 이것을 배운 학생들은 바로 다음 주일이면 교회 유년 주일학교에서, 또는 야학교에 가서 어린이들에게 가르쳤다. 그리하여 박태준 선생님의 곡은 그대로 대구 전 시에 퍼졌고 방학이 되면 프린트되어 시골로 퍼져서 보급되었다. 또한 멀지 않아서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정식(언론인·뉴스1 사장)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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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750m 유목국가 적신 '문학한류' - 국제신문, 2012년 2월 9일자
'한국문학으로 세계 봉사를 떠나자'.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찾아가는 10박12일 겨울 여정(1월 24일~2월 4일)의 짐을 꾸렸다. 대학의 '한마 글로벌 리더스 어드벤처 프로그램' 문학장학금 지원을 받아 대학생 8명과 2명의 교수가 함께 떠났다. 중앙아시아 내륙에 자리한 키르기스로 가는 길을 멀었다. 인천공항에서 카자흐 알마티공항을 경유해 키르기스 수도 비슈케크의 마나스공항에 도착하기까지 12시간이 걸렸다. 도착하니 현지시간 새벽 3시, 잠시 눈을 붙이고 깨어나자 하늘과 땅이 신비로운 설국이었다. 고개를 들면 어디든 하늘의 산, 톈산(天山)산맥이 흘러가고 있었다. 키르기스는 산악 국가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부른다. 수도 비슈케크 해발이 800m, 평균 해발이 백두산 높이인 2750m다. 유목 국가였던 이 나라에 '한국어 바람'이 불고 있다. 수도의 주요 대학마다 한국어학과나 교양강의가 있다. 우리 일행은 국립인 아라바예바대학과 사립인 슬라비안스키대학에서 각각 이틀씩 한국문학 수업을 했다. 현지 학생들은 기존 회화 중심의 한국어 강의와는 달리 한국시를 텍스트로 읽고, 노래하며 한국어를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을 흥미로워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외국어인 한국어가 아닌, 한글이 가진 예술의 향기를 전해주는 깊은 울림에 감동했다. 키르기스인도 시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그들은 옛 영웅 '마나스' 장군을 기리는 대서사시를 갖고 있다. 이 서사시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10시간 넘게 구술될 정도이니 한국시에 대한 그들의 열정도 뜨거웠다. 우리 정부가 운영하는 비슈케크 한국어교육원에서 그곳 한국어 교사들을 위해 한국어와 문학 교육을 위한 특강을 가졌다. 우리 학생들은 고려인과 교민을 위해 '고향의 봄 문학의 밤' 행사를 가졌다. 지난 2년간 대학의 청년작가아카데미에서 창작수업을 받아온 학생들이었다. 고려인과 교민들을 모시고 시를 읽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행사의 마지막, 다함께 손을 잡고 '고향의 봄'을 부르며 키르기스에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그곳 대학생의 현지 가정을 찾아가는 홈스테이도 인상적이었다. 손님을 '신의 선물'로 알고 극진히 대접하는 키르기스 문화를 배우고 한국어에 대한 질문 공세를 받으며 밤을 새웠다. 카자흐로 떠나기 전에 키르기스의 멋과 맛을 즐기는 잠시의 여유가 있었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충청도 넓이의 산정호수와 겨우내 지지 않는 톈산의 눈꽃을 만나고 고려인 시장을 찾아가 신선한 치즈와 꿀, 호두 등 싼값에 푸짐한 견과류를 즐겼다. 카자흐 알마티로 가는 길은 국경 검문소를 지나는 육로를 택했다. 그곳에는 1932년 첫 공연을 가진 올해 80년 역사의 고려극장이 있었다. 고려인들의 눈물이 새겨진 고려극장 자체가 원동에서 이곳까지 강제 이주한 수많은 고려인들의 또 다른 역사였다. 방문한 날 마침 다음 날 공연을 위한 최종 리허설이 열리고 있었다. 문학봉사 일정 내내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과 수시로 퍼붓는 눈은 겨울 나그네들에겐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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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문학봉사의 감동 - 한국일보 기고, 정일근(2012년 2월 4일)
[기고/2월 4일] 중앙아시아 문학봉사의 감동 •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중앙아시아 내륙의 키르기스스탄에서 겨울 나그네가 되어 머물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었다가 1991년 독립한 이 나라는 어디서든 만년설을 이고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이 보입니다. 너비 400km, 길이 2,000km나 되는 이 산맥을 톈산(天山)이라 부릅니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는 최근 두 차례의 유혈 사태를 겪은 도시답지 않게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그건 쉬지 않고 내리는 눈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내리는 이 눈 속에 1만8,000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고, 900여 명의 교민이 있습니다. 제가 이 나라를 찾아온 것은 고려인에게 '문학 봉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문학 봉사는 제가 만들어 본 말입니다. 지난 2년간 대학에서 문학을 배운 '청년작가아카데미' 학생들과 함께 고려인에게 고전문학 작품을 읽어 드리고 한국어 붐이 일고 있는 여기 대학생들에게 한국의 문학 작품을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치는 봉사를 위해서 먼 곳까지 찾아왔습니다. 우리와 달리 짧은 겨울방학을 마치고 2학기가 시작된 여기 대학생들이 생활 용어 중심의 한국어가 아닌 한국의 시와 소설을 만나 반짝이는 눈빛을 보여줘 반가웠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옛 영웅 '마나스' 장군을 기리는 대서사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문자인 키르기스 어로 만든 책도 있지만, 이 서사시는 10시간 넘게 구술되고 있는 것이 전통이니 시를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어제는 여기 한국어교육원에서 고려인과 교민들을 위한 '고향의 봄 문학의 밤'을 가졌습니다. 요란한 행사가 아니라 이원수 선생의 동시를 고려인과 우리 대학생이 함께 읽고, 노래로 만들어진 동요를 불러보는 행사였습니다. 그치지 않는 눈과 혹한 때문에 손님들이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으나 김루드밀라, 이올가, 베르벳, 엘비라, 나율라, 허리따… 50여 명이 속속 모였습니다. 고려인들은 서툴지만 이원수 선생의 동시를 읽고 동요들을 불렀습니다. 모르는 글자는 학생들에게 물어 가며 읽어 갔습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선생의 '겨울나무'를 동요로 부르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고려인이 많아졌습니다. 그건 이 설국에서 자작나무처럼 외로이 서서 혹독하게 견뎌온 지난 세월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분하게 시작된 문학의 밤은 아아, 결국은 눈물바다로 끝이 났습니다. 참석자 모두 손을 잡고 '고향의 봄'을 부르며 따뜻하게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저도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고향의 봄'이 왜 '한민족의 애국가'인지 키르기스스탄에 와서 알았습니다. 중앙아시아 어디에서든 이런 눈물은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저희가 가진 문학의 밤은 키르기스스탄 고려인에게는 1991년 독립이 된 지 20년 만에 처음 있는 문학 행사였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이스베틀라나 할머니는 "왜 진작 찾아오지 않았나"며 저희들을 나무랐습니다. 정민규 교육원장도 눈물을 훔치며 한 번 더 다녀갈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한글이 아닌, 한글이 전해 주는 문화의 울림을 갈망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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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어나는 '고향의 봄.' / 군산미래신문
다시 피어나는 ‘고향의 봄’ 군산미래신문 2011-12-12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국민동요로 널리 불리어지고 있는 아동문학가 이원수님의‘고향의 봄’노래이다. 언제 들어도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련하게 젖어오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노랫말이다. 지난 11월 23일 이원수문학관에 따르면 이원수 선생의 유족 이정옥(둘째 딸) 씨는 22일 창원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종달새, 다시 날다’에서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 공식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원수 님은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동시, 자유시, 수필 등 모두 다섯 편의 친일 작품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기관지 《반도의 빛 (半島の光)》에 발표했다. 동시에서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전할 지원병을 위해 후방에서 병역봉공을 다해야 한다고 했으며, 자유시에서는 농업보국에 정성을 쏟아 총후봉공의 완수를, 수필에서는 어린이들이 하루바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이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 딸 이정옥 씨는 “아버지가 친일작품을 썼을 당시, 자식들에게는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으시고 한글을 가르치시곤 하셨는데 그런 글을 쓰셨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며 “나름대로 존경해 하시던 분들이 굉장히 상처입고 배신감도 느끼신 걸 이해하고 모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기만 하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참 아름답고 용기있는 사죄이다. 남들처럼 숨기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죄를 그 자손이 인정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 누가 용서할 수 없다고 돌을 던지겠는가. 우리고장 출신의 소설가 채만식은 해방 후 ‘민족의 죄인’이라는 수필형식의 자전적 소설에서 자신의 친일 작품에 대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성찰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작가적 양심의 표현일 것이다. 대문호로 인정받고 있는 미당 서정주 시인은 그의 고향 고창에 그의 문학적 업적을 추앙하는 행사가 크게 벌어지고 있으나 그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도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그의 문학을 연구하고 따르는 문인들이나 가족들도 친일행적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조명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미당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문학사에서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문인가운데 42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 이들은 이미 고인이 되어 미처 자신의 행적에 대해 양심적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진 상황이기에 그 후손과 가족 그리고 그의 문학관을 따르는 문인들이 함께 역사 앞에 사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의 문학에 대한 이념적 벽을 낮추고 화해와 용서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문학적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는 피맺힌 사연들이 아직도 원한이 되어 민족의 상처로 응어리져 있다. 을사늑약으로 나라와 민족의 주권을 일본에게 팔아넘긴 친일매국인사들은 그 댓가로 권력과 부를 누리고 해방이후에는 오히려 건국공신으로 변신하여 권세를 유지하고 자손들까지 영화와 재산을 누리는 경우도 있으니 어찌 역사가 그 죄를 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늦게나마 묻혀있는 사료들을 조사 발굴하여 용서와 화해를 구하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다짐하려는 민족사적 노력이 있었으나 관련자들과 그 후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상황논리를 들어 회피하려 하고 오히려 다른 업적과 명분을 들어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는 철면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찌 친일행위자 뿐인가. 조국근대화니 정의사회구현이니 하는 대의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휘두르며 반대 세력을 무참히 죽이고 핍박해온 비민주 세력들 또한 역사는 참회를 요구하고 있으나 일말의 성찰은 커녕 경제발전 등의 업적으로 호도하여 오히려 새로운 권력을 형성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과연 역사는 진실을 묻고 갈 수 있는 것인가. 비록 그 대의가 시대적 사명이었다 할지라도 실천하는 방법과 수단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비민주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이어서 단 한명의 국민에게라도 위해를 가하였다면 이제라도 역사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성찰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용서와 화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우리 역사를 생명력을 갖고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중기 시인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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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아름다움 / 내일신문 - 문창재 칼럼 (2011.11.26)
[문창재 칼럼]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아름다움 문창재 본지 논설고문 조상의 이름은 클수록 좋고, 빚은 적을수록 좋다. 이름이나 빚이나 모두 후세에 물려지는 법이다. 조상의 큰 이름을 자랑하기는 쉬워도, 빚을 인정하고 갚기는 어려운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그래서 조상의 빚을 갚으려는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유명한 것은 뛰어난 시재 때문이 아니다. 역적으로 몰려 죽은 할아버지 행적을 뒤늦게 알고, 그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떠돌았기에 사람들 기억에 감동으로 각인된 것이다. 인간도살장 유태인 수용소 아우슈비츠 소장의 딸은 아버지가 진 천형 같은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사죄순례와 피해보상 운동에 바쳤다. 오래 전 외신기사가 뇌리에 남아 있는 것도 그 용기와 양심에 감동한 탓이다. 동요 '고향의 봄'으로 유명한 이원수(李元壽)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그 유족이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사죄했다는 이야기는 더 큰 감동이었다. 11월 22일 경남 창원시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행사에서 그의 둘째딸(이정옥·66)이 "아버지를 존경하던 분들이 큰 상처를 입고 배신감을 느낀 것을 이해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아버지를 용서해 주세요"하고 사죄했다. 딸은 아버지가 친일활동을 한 시절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자랑스럽지 않은 일을 아버지가 자식에게 고백했을 리도 없다. 한국인에게 민요처럼 불리는 '고향의 봄' 노랫말 작가의 딸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는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아버지 이름이 오른 것을 보고 처음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알았다고 한다. 기념사업을 반대한 시민단체들이 문제 삼은 이원수의 친일행적은 1940년에 발표한 글 '고도(古都)의 감회-부여신궁 어조영(夫餘神宮御造營) 봉사 작업에 다녀와서', 1942년 금융조합 기관지 '반도의 빛'에 쓴 '학도지원병을 보내며' '낙하산' 등 몇 편으로 알려져 있다. 동요작가 이원수씨 따님의 사죄 부여신궁 건설현장에서 노력봉사를 한 동원 체험기와,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청년들의 학도병 지원을 격려한 글이 제국주의 일본을 찬양하는 내용임은 알아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마산상업학교를 나와 함안금융조합 직원이 된 이원수는 독서회 모임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함안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10개월 옥고를 치른 반일활동 전력이 있다. 그가 금융조합에 복직하고 결혼을 한 뒤 변절한 계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선비적인 양심보다는 가족과 자신의 신변안전에 마음을 빼앗긴 소시민이 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름 없는 시골 동요시인의 금융조합 기관지 글이 얼마나 영향력을 끼쳤을지는 알 길이 없다. 명성이 뜨르르했던 춘원 이광수나 김동인, 주요한, 김동환, 모윤숙, 서정주, 유치진, 최재서 같은 친일문인들과는 비유도 안되는 인물이었음도 틀림없다. "지금부터 2600년 전 신무천황께서 어(御)즉위하신 고큐산[香久山]에서 香山을 따고, 光洙의 光자는 그대로 쓰고, 洙는 일본이름 식으로 郞으로 바꾸었다"고 창씨개명 이름풀이까지 발표했던 춘원은 일제 말기 일본어로 소설을 썼다. "조선 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 만큼 조선인은 일본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글을 쓸 정도였다. 그 이름 높은 문인과 자손들이 어떻게 한때의 과오를 청산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원수의 딸처럼 용기 있는 일을 하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되도록 과거를 묻어두고 책임을 피하려 했던 본인들의 비겁하고 뻔뻔한 언행도 국민의 공분을 샀다. 광복 후 반민특위에 끌려간 춘원은 "민족을 위하여 살고 민족을 위하다가 죽은 이광수가 되기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비하면 "정말 해방이 될 줄 모르고 친일을 했다"고 한 서정주의 고백은 사뭇 인간적이다. 선대 대신해 용서와 사과 구한다면 민족문제연구소가 우여곡절 끝에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는 5000명 가까운 이름이 들어 있다. 그들의 후손은 대체로 잘 되었다는 것이 사회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할아버지의 '원죄'를 인정하는 이가 드물어 간접적인 청산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아무 책임이 없는 자손들이지만, 선대를 대신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친일문제를 둘러싼 반목은 크게 완화될 것이다. 이원수를 대신한 딸의 사죄가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가 될 수는 없을까. 진솔한 말 한마디, 한번의 고개숙임이 아버지 할아버지 죗값을 씻는 아름다운 행동이라는 걸 그들이 다 깨닫기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까.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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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뛰게하는 이름 '조국'… 당신들이 조국을 아나? (노컷뉴스 2011.11.25)
가슴을 뛰게하는 이름 '조국'… 당신들이 조국을 아나? [변상욱의 기자수첩] "반민족 행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2011-11-25 10:52 CBS 변상욱 대기자 작사가인 아동문학가 고 이원수 시인(1911~1981)의 자녀들이 탄생 100년 기념행사 자리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친일 행각에 대해 사죄의 뜻을 밝혔다. 그 차녀의 반성은 이러하다. "아버지를 존경하던 사람들이 상처 입고 배신감도 느끼신 걸 이해하고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한다." ◇ 과 이원수 시인은 1911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마산.창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3살 되던 해에 지에 [고향의 봄]이 당선되는 등 뛰어난 재능으로 주목받았다. 1935년 일본에 저항하는 반일문예독서회 활동을 하다 적발돼 10여개 월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친일성향의 시와 수필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1942년부터이고, 2002년 이원수 씨의 친일작품들이 규명되면서 민족문제 연구소 발행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다. 지원병 형님들이 떠나는 날은 거리마다 국기가 펄럭거리고 소리 높이 군가가 울렸다. ...... 부디부디 큰 공을 세워주시오 우리도 자라서 어서 자라서 소원의 군인이 되겠다. - 1942~1943 [반도의 빛] 1942년은 일본군이 싱가폴을 점령하고 남양군도 일대를 휩쓸며 승승장구하던 시기이다. 전 국민 동원령과 함께 식민지 탄압을 강화하던 시기에 이르러 어쩔 수 없이 친일 글을 써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원수 시인에 대해 대가성과 이후 삶의 행적을 두고 안타깝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친일 작품을 썼다지만 자식들에게 일본말을 못 쓰게 하고 한글을 가르쳤다 한다. 총독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은 것 없이 가난하게 생활했고 계속 감시를 받으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해방 이후 독재정권,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자주독립과 민주화, 민족분단의 극복을 위해 끝끝내 자기 길을 걸어간 문인이 그리 흔치 않은 문단 상황에서 매도만 하기엔 너무 안타깝다는 여론도 있다. 다만 스스로 국민 앞에 나서 직접 사죄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유가족들로서는 뼈아플 것이다. 고인은 1970년대 말에 몸져누워 거동을 못했다. 1970년대 말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군 경력이나 한일 굴욕외교 반대 데모와 처벌의 여파로 친일잔재 청산이란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친일청산이 거론된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시절까지 고인이 생존했더라면 당연 사죄의 글을 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동료 작가들은 병석에 누운 채 딸에게 대신 적어 내려가게 한 동시(童詩) 가 '참회의 글'일 거라고 받아들인다. ....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젠 찬바람 무섭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이원수 문학에서 고뇌와 참회의 흔적은 곳곳에 진하게 배어 있다. .... 엄매에 엄매에 염소가 웁니다. 울 밖을 내다보고 염소가 웁니다. 이 문 좀 열어줘, 이 문 좀 열어줘. 아무리 발돋움질해 봐도 아니 되어 뿔로 탁탁 받아 봐도 아니 되어 울안에서 염소는 파래진 언덕 보고 매애 웁니다. 잔디밭에 가고 싶어 매애 웁니다... ◇ 과 , 모두가 사랑이다 해방 이후에는 민주주의와 휴머니티에 대한 갈구가 이 자리를 대신한다. 1960년 4.19 직후 지은 .... 자유를 달라 외치며 달려들다가 길바닥에 퍽 쓰러져 죽은 4월 19일. 그 무서운 날 언니의 피를 보고 나는 맹세했어요 ... 동화 는 오빠가 4.19 시위에 참가하자 어린 여동생이 오빠에게 돌멩이를 주워주다 총에 맞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4.19 시위현장을 다큐멘터리로 보는 듯 써내려간다. .... 깎아지른 돌산, (중략) 반이나 떨어져 나가 허연 뼈살이 바람에 시린 - 돌산 (중략) 오밀조밀 판자집, 동네 아이들 노는 곳에 바로 낭떠러지. 아래에선 오늘도 다이너마이트가 산을 깬다. 동네 아이들은 폭음을 들이마시며 벼랑 위에서 자라는 독수리들이다. 날개가 어려서 아직은 부리로 논다 ... 고인은 1970년대 초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을 다룬 동화를 발표하기도 했고 민족분단과 냉전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위한 아동문학의 길도 열었다. 호는 동원(冬原), '겨울들판'이다. 이원수 씨의 친일 작품을 냉엄하게 들추어 꾸짖은 것도, 아픈 민족의 역사를 살피며 작가의 참회를 헤아리는 것도 모두 내 나라를 위한 뜨거운 마음들이다. 속죄로 일생을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아버지의 과거에 솔직히 사죄를 하고, 또 그 사죄를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는 모습은 얼마나 좋은가. ◇ 가슴을 뛰게 하는 이름, 조국 2005년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2006년부터 친일파 재산 환수 작업이 시작됐다. 친일파 170여명으로부터 서울 여의도 땅의 1.3배 정도 되는 1100만 제곱미터, 1천억 원 상당을 국가에 귀속시켰다. 그러나 환수 대상 친일파 후손들의 80%가 이에 불복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정부 승소율이 85%선). 아예 근거가 되는 특별법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으나 재산 환수는 합헌으로 결정됐다. 형법상의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에 대해서는 스스로 뉘우치고 사죄하지 않는 한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시(詩) 의 한 구절이다. "한번을 부르면 가슴이 뛰고, 두 번을 부르면 코끝이 뜨거워지는 이름... 내 조국" 친일잔재 청산에 이르지 못해 친일파 후손이 친일자산으로 호의호식하며 법대로 하자고 떵떵 거리고, 공영방송이 독립군 토벌 친일파와 독재권력자 찬양방송이나 기획하는 나라로 계속 간다면 과연 우리에게도 한 번만 불러도 가슴이 뛰는 조국애가 이어져 갈 수 있을까?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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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1월 24일] "아버지 이원수를 용서해 주세요" (한국일보 2011.11.23)
[길 위의 이야기/11월 24일] "아버지 이원수를 용서해 주세요"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사과합니다. 이제 아버지를 용서해주세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동요 '고향의 봄'의 이원수 선생 유가족인, 차녀 이정옥씨가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22일 경남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가진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복간한 선생의 첫 동요동시집 출판기념식에서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를 하면서 나온 아버지 과오에 대한 사과와 용서였다. 선생의 유가족들은 희귀본인 1947년에 출판된 를 복간해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 사과하고 그 일로 상처받은 고향 창원시민에게 선물했다. 이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증인으로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격했다. 이원수 선생은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고도 일제 말기의 어려운 생활고 속에서 남긴 친일 시 5편이 평생, 이 땅의 올곧은 어린이문학을 위해 헌신한 큰 공(功)의 발목을 잡는 족쇄 같은 과(過)가 되었다. 누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의 옛일에 대해 사과를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건 딸의 용기였다. 아버지를 두 번 죽이는 일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하는 부활이라는 생각에 나는 몸을 떨었다. 이정옥씨는 아버지가 친일 시를 남길 무렵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평생 존경했던 딸이 고개 숙여 청하는 사과 앞에 참석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격려했다. 그때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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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이원수씨 유족 “아버지 친일행위 공식사죄” (한겨레 2011.11.23)
‘고향의 봄’ 이원수씨 유족 “아버지 친일행위 공식사죄” 동요 ‘고향의 봄’ 작사가인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씨의 친일 행각에 대해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공식 사과했다. 친일파로 지목된 사람의 자손이 대신해서 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공개 사과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씨의 둘째딸 이정옥(66)씨는 22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이원수 탄생 100돌 기념행사에 참석해 “나름대로 아버지를 존경하던 분들이 굉장히 상처 입고 배신감도 느끼신 걸 이해하고, 모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기만 하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한다”며 유족을 대표해 이씨의 친일행위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고 장진화 ‘고향의 봄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23일 전했다. 이씨의 큰딸 이영옥(70)씨와 함께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둘째딸 정옥씨는 와의 통화에서 “미국에 있는 오빠(이경화·74) 등과 의논해 공식 사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옥씨는 “아버지가 친일작품을 썼다는 1940년대 초반에도 ‘자식들에게는 일본어를 못 쓰게 하고 한글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와 오빠한테서 들었기 때문에, 2002년 아버지의 친일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친일작품을 썼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3·1절이 다가오면 일본 순사가 우리 집 주변을 감시했고, 아버지가 ‘일본이 곧 망할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해 입조심하라고 했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며 “아버지를 비난하더라도 일제의 압박을 받던 당시의 어려운 상황도 고려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씨는 ‘고향의 봄’ 등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으나,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2~1943년 조선금융연합조직회의 기관지 에 학도병 지원을 찬양하는 ‘지원병을 보내며’ 등 5편의 친일시를 실은 사실이 2002년 뒤늦게 드러났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2008년 을 발간하며 그의 이름을 4776명의 친일인사 가운데 한명으로 올렸다. 창원/최상원 기자 csw@hani.co.kr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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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 (2011.11.13 한국일보)
"나의 살던 고향은…"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 22일 창원성산아트홀서… 문학그림전도 함께 열려 창원=이동렬기자 dylee@hk.co.kr 국민동요 '고향의 봄' 작가인 동원 이원수(1911~81) 선생의 첫 동요동시집 의 복원을 기념하는 시노래공연이 경남 창원에서 열린다. 사단법인 고향의 봄 기념사업회는 올해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복원을 기념하는 시노래공연을 22일 오후 3시 창원성산아트홀 전시장에서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공연에서 선생의 유족은 창원시민과 아동문학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를 복원해 시노래공연 행사 당일 무료로 배포한다. 1947년 '새동무사'에서 회색 재생지로 제작한 종달새는 이원수문학관에서 소장한 한 권이 유일할 정도로 희귀해 기념사업회에서 활자체와 디자인 등 발간당시 원본을 그대로 재현, 복원본을 만들었다. 이번 공연은 고승하, 설진환, 송철식 등 지역 작곡가들이 이 선생의 동시에 곡을 붙인 시노래 형태로 선보이고, 이원수ㆍ윤석중 탄생 100주년 문학그림전 '고향의 봄을 그리는 소년'도 함께 개막한다. 27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엔 10여명의 국내 유명화가들이 '고향의 봄', '겨울나무', '고추먹고 맴맴', '퐁당퐁당' 등 한국 아동문학계에 선구적 업적을 남긴 이원수ㆍ윤석중 선생의 동시들을 새롭게 형상화한 미술작품들이 전시된다. 이 전시회는 그동안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서울 선유도공원, 울산북구문화예술회관 등지에서 순회 개최됐으며, 이번 창원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김일태 고향의봄 기념사업회 회장은 "이 선생이 탄생한 지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여러 사업들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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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악보 원판 첫 공개..'등록문화재展' (아시아경제 2011.10.21)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글이 됐다. 그리고 얼마 뒤 이 글은 노래가 됐다. 아동문학가 이원수가 쓴 노랫말에 작곡가 홍난파가 곡을 붙여 발표한 '고향의 봄' 얘기다. 이 동요가 실린 '조선동요 100곡집'의 악보 인쇄 원판이 21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이날부터 11월4일까지 열리는 '근대의 거울, 등록문화재 전(展)'에서다. 태어난 곳은 양산이지만 1년도 채 안지나 창원으로 집을 옮긴 이원수. 그가 15살 때 창원의 성문 밖 개울, 꽃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 등을 그리며 쓴 '고향의 봄'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그리움을 전할 모양이다. 문화재청(청장 김찬)은 근ㆍ현대 시기의 유물인 등록문화재를 전시하는 '근대의 거울, 등록문화재 展'을 21일부터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연다고 이날 밝혔다.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가치가 큰 것을 골라 지정하는 등록문화재를 이렇게 한 자리에 모아 전시회를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시회는 문화재청 50주년과 등록문화재 제도 시행 10주년을 맞아 마련됐다. '근대의 거울, 등록문화재 展'을 찾은 사람이라면 중명전 2층 전시회장 오른쪽 안쪽에 자리한 '홍난파 동요 악보 원판'만은 놓치지 말아야 할 듯 싶다. 지난 17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뒤 첫 선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봄'과 '낮에 나온 반달', '하모니카', '퐁당퐁당' 등의 악보 인쇄 원판은 그 크기는 작지만 조용한 울림을 준다. 악보 원판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벽에 헤드폰 하나가 걸려 있는 게 눈에 띈다. 헤드폰을 쓰면 인쇄 원판에 있는 곡이 노래가 돼 흘러나온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김종헌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장은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재는 모두 476건이며, 그 가운데 동산 문화재는 102건에 달한다"며 "이런 등록문화재를 동떨어진 과거로만 보기보다는 지금의 삶과 연결시켜 우리가 여기서 무얼 배울 수 있는 지를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이번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근대의 거울, 등록문화재 展'에선 '홍난파 동요 악보 원판' 외에 지난 2월 등록문화재가 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광복전후기 우체통, 분쉬의 외과도구, 빅타레코드 금속원판, 벽걸이형 자동식 전화기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진품은 아니지만 백범 김구 인장, 안익태 대한국애국가 자필 악보,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등의 복제품도 이번 전시회에서 꼭 챙겨봐야 할 문화재들이다. 성정은 기자 jeun@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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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 '문학그림'을 만나보시죠 (울산신문 2011.10.16)
자녀와 함께 '문학그림'을 만나보시죠 2011년 10월 16일 (일) 20:18:26 '동화(童話) 속을 거닐게 했다. 가까이 살살 간지럼을 먹이며 따사롭고 화사하고 꿈꾸게 하는 듯한 새 봄날의 햇살이 살금살금 내비치고 있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바람결에 새 잎을 여는 초목이 한가득이다. 외줄기 들판길을 끝없이 걷게 한다. 가슴에 절로 훈풍이 스며든다. 온몸에 전율이 파도쳤다.' 화가들이 동시(童詩)를 해석한 뒤,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그림을 만들었다. '문학그림'이라는 들판이 펼쳐졌다.  울산 북구 문화예술회관에서 지난 12일부터 전시 중인 우리나라 아동문학계의 거목 윤석중(尹石重), 이원수(李元壽)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그림전이 꿈을 다시 꿀 기회를 열어주었다. 12일 오후에 조촐하게 치러진 개막식 행사는 또 얼마나 가슴을 흐뭇하게 했던가. 맑고 고운 자그마한 샛강이 졸졸졸 가슴에 흘러들어와 기쁨의 큰 강물로 넘나들게 했다.  지금껏 힘깨나 쓰는 유명 인사들이 판치던 의례적인 개막식 행사를 지양했다. 테이프 커팅은 아주 이색적이었다. 오색한지로 만들어진 테이프를 참석자 모두가 손으로 잡고 원(圓)을 그리며 둘러서서 사회자의 구령에 맞춰 가위 대신 손으로 찢으면서 끝냈다. 축가도 남자 성악가와 참석자들이 함께 불러 더욱 정겹고 좋았다.  이원수의 '고향의 봄'이 불려졌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운 메아리를 타고 전시장에 퍼졌다. 윤석중의 '기러기'가 뒤를 이었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두 사람보다 네 살 연장자로 속정을 주고 받은 깊은 교유(交遊)를 했던 울산 출신의 천재 시인 서덕출(徐德出) 선생의 '봄편지'도 불리었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조선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참석자들의 얼굴에 따사로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세 사람은 울산과 서울, 창원이라는 지리적인 공간을 뛰어넘어 늘 봄날을 그리워 했다. 조국에 희망의 새 불씨를 심어주려 서덕출이 '봄편지'를 썼고, 이원수가 '고향의 봄', 윤석중이 '봄'을 지었다. 파릇파릇 새싹 돋는 봄날이면 희망 또한 솟구치지만, 그러나 세상은 온통 잿빛 투성이였다. 일제의 쇠사슬에 얽매여 있는 탓이었다. 조선의 봄은 정녕 오지 않을 것인가. 조국 미래의 등불 어린이들에게 새 봄날의 희망을 심어주느라 애썼다.  '고향의 봄을 그리는 소년'이란 표제가 붙은 윤석중, 이원수 문학그림전은 두 사람이 쓴 동시와 동요 스무여덟 점이 고운 그림으로 태어나 전시되고 있다. 김덕기와 정일, 황주리 등 10명의 화가들은 유화로, 미디어아트로, 나무를 소재로 하여 동시를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활자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문학작품이 그림이라는 장르를 통해서도 만난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미술평론가 김윤섭의 해설은 문학그림에 쉽게 다가서게 했다. 김덕기가 윤석중의 '흐르는 시내'와 '어린이날 노래', 이원수의 '고향의 봄'과 '달'을 그린 문학그림에 대해 "화사한 색감과 유쾌하고 행복한 장면이 돋보인다. 를 여름방학으로 해석한 장면은 아이들과 강아지, 새들이 한데 어우러진 특유의 발랄한 구성이 눈길을 끈다. 를 약속, 을 지붕 너머의 풍경들, 을 여름밤 등으로 해석한 것은 화가가 유년시절에 느꼈던 정감어린 정서가 그대로 배어난다"고 했다.  이번 문학그림전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 대산문화재단, 고향의봄기념사업회와 함께 국민들에게 널리 불려지고 있는 윤석중, 이원수의 동시를 그림으로 제작ㆍ전시함으로써 그들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것. 지난 8월에 시작돼 전국 순회전시를 하고 있다. 오는 26일까지 북구문화예술회관에서, 11월 7일부터 15일까지는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된다.  울산에서는 첫 선을 보이는 문학그림전은 갖가지 추억과 꿈을 키우던 설레임까지 담고 있다. 어른에게는 잠시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 벅찬 시간이 될 것이고, 어린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그래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손을 잡고 전시장을 찾아 문학그림의 따사로움을 가슴 가득 채웠으면 한다. 울산신문(http://www.ulsanpress.net) 김종경 대기자 kimj@ulsanpress.net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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