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인뉴스 2014.3.7 뜸북뜸북 뜸북새 - 시그림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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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원수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366회 작성일 15-04-16 11:50본문
'뜸북뜸북 뜸북새~' 시그림과 만나다
이원수, 최순애 선생 시그림전 등
2014년 03월 07일 (금) 08:39:45 배근영 inforcross@hanmail.net
‘뜸북뜸북 뜸북새∼’로 시작하는 노래 <오빠생각>.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처럼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의 노래로 불리는 이 노래는 수원에 사는 열두 살 소녀 최순애 선생이 1925년《어린이》 11월호에 발표한 동시에 1930년 박태준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이다.
최순애 선생은 1914년 2월 14일(음력) 수원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빠는 방정환 선생님과 더불어 어린이문화운동을 했던 최영주, 동생은 <꼬부랑 할머니>를 쓴 최영애이기도 하다.
1925년 <오빠생각>을 발표한 이후로 ‘기쁨사’ 동인으로 활동했던 최순애는 1928년 삼일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배화여고에 입학하지만 얼마 안 돼 건강이 좋지 않아 다니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기쁨사’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이원수 선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오다 1936년 6월에 결혼을 한다.
가난한 이원수 선생께 시집와서는 어려움도 참 많았다고 한다. 이원수 선생이 남긴 글 <나의 아내>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내가 스물여섯, 처가 스물셋에 결혼했는데 실직의 가난 속에서 아내는 갖은 고초를 겪었고, 해방 되자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왔으나 역시 온갖 경난은 약한 그에게 너무나 과중하게 계속되었었다.’
하지만 최순애 선생은 어둡고 힘든 세상 속에서 문학에 대한 꿈까지도 접고 이원수 선생을 위해 사랑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1967년 여성동아 7월호 별책부록으로 나온 책 『자상한 아내 101장』을 보면 최순애 선생의 남편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벌써 회갑을 보내버리신 분, 젋은 날보다 알뜰하게 강한 내조의 보살핌이 필요할 것 같다. 고독한 날의 마음이 더 맑도록, 약해가는 기운을 더 보태도록.’
그런 마음을 이원수 선생은 더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하지 않고 언젠가는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내에게>(『처음 만난 그대로』1979년, 태창문화사)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그 글 중에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감상적이기만 하던, 그리고 허약하던 내 아내가 긴 세월을 버티어온 그 끈기와 지혜를 고마워한다. 고생을 해도 부부가 된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내도 그렇게 생각해주겠지.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지만.’
문학을 통해 인연을 맺고 한국아동문학을 위해 평생을 보낸 두 사람. 이원수 선생은 1981년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1998년 최순애 선생도 하늘나라로 가셨다. 하지만 두 분이 남긴 노래는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불리며, 때로는 누군가의 향수를, 때로는 어린 시절 추억을, 때로는 그리움을 달래고 있을 것이다.
3월 14일은 최순애 선생이 태어나신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서 이원수문학관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3월 14일부터 30일까지 이원수, 최순애 시그림 및 사진전을 마련했다. <오빠생각>을 비롯해 <봄날> <이불> 등의 최순애 시그림과 이원수선생의 시그림, 두 분이 함께 한 사진 등을 만날 수 있다.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는 이 외에도 지역화가들이 참여하는 최순애 문학그림전, 기념책자 발간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기념책자에는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최순애 선생의 삶과 작품세계와 작품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원수, 최순애 선생 시그림전 등
2014년 03월 07일 (금) 08:39:45 배근영 inforcross@hanmail.net
‘뜸북뜸북 뜸북새∼’로 시작하는 노래 <오빠생각>.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처럼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의 노래로 불리는 이 노래는 수원에 사는 열두 살 소녀 최순애 선생이 1925년《어린이》 11월호에 발표한 동시에 1930년 박태준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이다.
최순애 선생은 1914년 2월 14일(음력) 수원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빠는 방정환 선생님과 더불어 어린이문화운동을 했던 최영주, 동생은 <꼬부랑 할머니>를 쓴 최영애이기도 하다.
1925년 <오빠생각>을 발표한 이후로 ‘기쁨사’ 동인으로 활동했던 최순애는 1928년 삼일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배화여고에 입학하지만 얼마 안 돼 건강이 좋지 않아 다니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기쁨사’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이원수 선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오다 1936년 6월에 결혼을 한다.
가난한 이원수 선생께 시집와서는 어려움도 참 많았다고 한다. 이원수 선생이 남긴 글 <나의 아내>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내가 스물여섯, 처가 스물셋에 결혼했는데 실직의 가난 속에서 아내는 갖은 고초를 겪었고, 해방 되자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왔으나 역시 온갖 경난은 약한 그에게 너무나 과중하게 계속되었었다.’
하지만 최순애 선생은 어둡고 힘든 세상 속에서 문학에 대한 꿈까지도 접고 이원수 선생을 위해 사랑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1967년 여성동아 7월호 별책부록으로 나온 책 『자상한 아내 101장』을 보면 최순애 선생의 남편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벌써 회갑을 보내버리신 분, 젋은 날보다 알뜰하게 강한 내조의 보살핌이 필요할 것 같다. 고독한 날의 마음이 더 맑도록, 약해가는 기운을 더 보태도록.’
그런 마음을 이원수 선생은 더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하지 않고 언젠가는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내에게>(『처음 만난 그대로』1979년, 태창문화사)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그 글 중에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감상적이기만 하던, 그리고 허약하던 내 아내가 긴 세월을 버티어온 그 끈기와 지혜를 고마워한다. 고생을 해도 부부가 된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내도 그렇게 생각해주겠지.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지만.’
문학을 통해 인연을 맺고 한국아동문학을 위해 평생을 보낸 두 사람. 이원수 선생은 1981년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1998년 최순애 선생도 하늘나라로 가셨다. 하지만 두 분이 남긴 노래는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불리며, 때로는 누군가의 향수를, 때로는 어린 시절 추억을, 때로는 그리움을 달래고 있을 것이다.
3월 14일은 최순애 선생이 태어나신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서 이원수문학관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3월 14일부터 30일까지 이원수, 최순애 시그림 및 사진전을 마련했다. <오빠생각>을 비롯해 <봄날> <이불> 등의 최순애 시그림과 이원수선생의 시그림, 두 분이 함께 한 사진 등을 만날 수 있다.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는 이 외에도 지역화가들이 참여하는 최순애 문학그림전, 기념책자 발간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기념책자에는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최순애 선생의 삶과 작품세계와 작품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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