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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친일작품' 어떻게 볼까 (오마이뉴스 20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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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원수문학관 댓글 0건 조회 2,136회 작성일 15-04-1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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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가 이원수 님 '친일작품' 어떻게 볼까

 (책이 있는 삶 31) '친일' 작품 나왔으니 무덤에서 파내어 다시 죽이자?
 

이원수 선생 친일 작품 이야기가 나온 지는 2002년 3월부터이니까 제법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이원수 선생을 놓고 꺼내는 ‘친일부역’은 그다지 알맞아 보이지 않는다.

이원수 선생이 병을 앓아 드러누운 때가 1970년대 끄트머리요, 병실에 드러누워 입으로만 따님한테 겨우 몇 마디 읊조리면서 이야기하는 삶으로 여러 해 보내다가 1981년에 영영 떠나셨다. 세상을 떠나기 앞서 여러 해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고무호스로 영양소를 위로 집어넣으며 겨우 목숨을 이어나가셨다.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일을 하느라 당신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와 동화 창작뿐 아니라 나라밖 좋은 어린이문학 번역, 그리고 뜻있는 어린이문학가를 키우고 돌보는 일과 어린이문학 단체가 비틀리지 않도록 지키면서 가꾸는 일을 한 이원수 선생이다.

그렇다. 해방 뒤, 어린이문학 단체 이끄는 일을 맡아 해 오면서, 독재정권에 빌붙는 허수아비와 끄나풀한테 얼마나 시달리던 이원수 선생이었던가. 독재정권 허수아비와 끄나풀은 얼마나 이원수 선생을 쓰러뜨려서 이 나라를 움켜쥐고 뒤흔들려고 했던가.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독재정권에 빌붙는 허수아비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얼마나 공격을 받고 힘들게 살아야 했던가. 외로운 기둥이 되어 갖은 바람과 모진 말밥을 견디면서 얼마나 아이들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하셨던가.

지난 50∼70년대, 독재정권 허수아비와 끄나풀에 맞서서 이 땅 아이들을 지키려고, 또 이 땅 아이들을 사랑하는 힘여린 동료 어린이문학가를 보듬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리고 ‘간첩’으로 몰리고 형사가 뒤를 밟고, 쓰는 글마다 검열에 시달리면서 차가운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이원수 선생은 피땀을 흘리며 고달프고 외로웠어도, 또 모두들 독재자한테 입다물고 있었어도 붓을 들어 이승만을 비판하고 박정희를 비판하는 동시와 동화를 남겼다. 모두들 조용히 입닥치고 있을 때, 꿋꿋하게 붓을 들어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동화를 쓰면서 그 어둡던 세월에 아이들한테 힘과 희망을 실어 주려고 했다.

아파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몸으로 병자리에 누워 있는 1980년 그때에도 광주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당신이 광주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못 써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만 하셨다. 곧은 한길에서 비껴나지 않으려고 꼿꼿하게 살아가셨는데, 당신이 살아오던 그동안에 당신이 할 수 있던 가장 걸맞는 ‘죄 씻기’는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왜 당신 양심은 못 지키면서 당신 후배들과 이 나라 아이들만 지키려 했는가.

명단 4776명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친일부역을 한 숫자가 이만큼밖에 안 된다고?

친일인명사전에는 딱 한 사람만 들어가도 괜찮다. 한 사람만 넣든 백 사람을 넣든 만 사람을 넣든, 친일부역 작품 넣기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작품을 넘어야 한다. 친일작품을 남겼던 사람들이 보여준 그네들 삶을 함께 말해야 한다. 이들이 해방 뒤 꾸려온 삶을 함께 말해야 한다. 일제식민지 때, 친일을 하지 않고도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은 친일작품이 없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친일작품은 없으나 독재부역에 온마음 바친 사람들은 무엇인가.

사람들 성격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사는 이가 있고, 털털하게 털어내는 사람이 있으며, 어려움을 맞불 놓듯이 헤쳐나가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흐름과 사람 성품에서 이원수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죄는 묻고, 잘잘못은 따져야 한다. 그런데 ‘이원수 선생 기리는 사업을 모두 접으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뭐하자는 소리인가? 이원수 선생 같은 분은 마땅히 기념사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해야 한다. 이원수 선생이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낸 훌륭한 발자취는 이 발자취대로 우리들이 이어받고 물려받고 가슴에 새겨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원수 선생이 안타까이 남긴 발자취도 안타까운 발자취대로 곱새기고 되새기고 아로새겨야 하지 않을까. 티끌 한 점도 없을 줄 알았던 이원수 선생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던 아픈 티끌을 간직한 채 온삶을 보내었던 이원수 선생이었음을 헤아리면서, 배울 대목은 배우고 비판할 대목은 비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너, 예전에 이런 잘못을 저지른 적 있으니까, 넌 죽어서도 씻을 수 없는 전과자야!’ 하고 도장을 찍으면서 ‘죽은 주검을 파내어 사형을 시키겠다’는 소리인가.

2002년 3월에 경남대 박태일 교수가 이원수 선생 친일시 문제를 꺼냈을 때, 이오덕 선생은 “선생의 빛나는 모든 작품뿐 아니라 일제 마지막에 썼다는 그 친일 동시까지도 있는 그대로 죄다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더 큰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선생도 저승에서, 생전에 스스로 깨끗이 보여 주지 못했던 것을 우리가 하여 준 일에 대해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선생의 작품을 읽게 되는 우리 아이들까지도, 세상의 어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더 깊게 더 넓게 생각하게 되고, 더 참되게 깨닫고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완전무결한 성인군자처럼 살아간 위인에게서보다도 결함이 있었던 사람, 자기와 비슷한 점이 있었던 사람한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듯이, 나도 한때 잘못했지만 그것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면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 있구나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도 될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훌륭하게 남긴 작품은 훌륭한 모습이고, 안타까이 남긴 자취는 안타까운 자취다. 어느 하나는 씻어내거나 없는 듯 꾸밀 수 없고, 어느 하나만 돋보이도록 할 수 없다. 이렇게 해야 살아 있는 가르침이 되지 않겠나.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뜻도 이런 데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한 사람 삶과 발자취를 깊이 더듬거나 헤아리는 가운데 ‘이런 잘못을 드러내고자 하는 일은 우리 역사를 바로잡아 가르치고자 함’이라 한다면, ‘때려잡기’가 아닌 ‘살아숨쉬는 가르침’이 되도록 슬기로운 길을 함께 찾아야 하리라 본다. 친일인명사전은 인기투표 하는 사전이 아니다. 이름을 깎아내리거나 땅속에 파묻어 버리자는 사전도 아니다. 우리가 참답고 아름다이 살자고 하는 사전이다.

한 점 티끌이 없을 줄 알았던 사람한테서도 티끌이 있었음을 느끼고 실망하거나 내동댕이치자는 친일인명사전인가? 한 점 티끌을 감싸안으면서 이와 같은 슬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고 되뇌이자고 하는 친일인명사전인가? <얘들아 내 얘기를>(웅진출판사,1984)이라는 이원수 선생 수필에 나오는 글을 몇 대목 옮겨 본다.

도둑의 이야기가 났으니 하나만 더 하기로 하자. 어느 겨울의 일이다. 내 집에도 인기척을 듣고 나가 보니, 키가 큰 사나이가 대문을 나가고 있었다. 좀 무서웠다. 그러나 나갔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딸아이가 하는 말이, “아버지, 내 새로 산 장갑 여기 뒀었는데 가져갔어요?” 했다. 식구들이 사방을 두루 살펴보아도 없어진 건 따로 없었다. 그럼 도둑은 기껏 내 딸의 장갑만 집어간 것이다. 큰마음먹고 남의 집에 들어온 도둑으로서는 참으로 보람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별로 가져갈 만한 물건이 없는 것은 내가 부자의 생활을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추운 겨울이다. 이런 때, 장갑은 역시 필요한 물건이다. 몇 푼어치 되지도 않는 장갑만 들고 도망친 그 도둑은 그 장갑을 어떻게 했을까? 그까짓 것 어디 갖다 팔아도 돈이 될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 도둑은 어쩌면 제 딸아이나, 제 누이동생에게 그 장갑을 주었을 때, 딸이 어쩌면 이렇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이거 샀어?” 그러나 그 장갑은 새것이기는 하지만 몇 번 낀 것이니까 아주 새것은 아니다. 그 딸도 그런 것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아버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대답하기가 어려워서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딸아이가 만일 내가 보는 자리에 그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면, ‘얘, 그 장갑 어디서 났니? 그건 우리 거야, 이리 내!’ 하고 말할 생각은 아예 없다. 나는 그 아이의 장갑 낀 손을 덥석 잡고, ‘아가, 너 장갑 좋구나! 엄마가 사 줬니?’ 하고 어루만져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태연히 참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잘못하면 그 애의 손을 잡고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이원수 '잃어버린 장갑')

나막신 장수는 비가 와야 좋아하고 미투리 장수는 날이 개어야 좋아하는 것같이, 지루한 비라도 다들 싫어할 때도 우산을 파는 아이들은 좋아 날뛰는 광경도 자주 본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8ㆍ15 해방이 되어 모두가 다 좋아했는데 그 중에는 은근히 싫어한 사람도 있었고, 남북통일은 우리 민족 모두가 바라는 것이지만 은근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이원수 '태풍 '빌리' 호와 포플러숲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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