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고향의 봄』그림 김동성(2013년,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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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자료
이원수문학관 자료실의 기사자료입니다. 이원수선생님과 고향의봄기념사업단 관련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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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13살 수원소녀의 동시 '오빠생각'이 국민동요가 되다
여러분들은 오빠생각이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아마 오늘날에도 아이들이 쉽게 따라부르는 동요중 하나일 텐데요. '오빠생각'이라는 노래의 작사가는 1925년대 수원에 사는 13살 소녀의 동시였다고 하네요. 지난 10월 31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린 수원박물관 주최, '수원지역 근대문화예술인들의 삶과 활동'이라는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많은 문인들 가운데, '오빠생각' 작사가 최순애 씨와 '고향의 봄' 작사가인 이원수 씨 부부의 두 딸인 이영옥(1941년생, 오산시 거주) 씨와 이정옥(1945년생, 군포시 거주) 씨를 만나 나눈 인터뷰 내용을 담아왔습니다. 인터뷰는 e수원뉴스 김우영 편집주간님이 진행해 주셨어요. ^^ 블로그지기도 금방 빠져버린 동요부부의 로맨스 함께 들어 보실래요? *** *** ■ '오빠생각'은 수원출신 최순애 씨의 작품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925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발행하던 잡지 ‘어린이’ 지면에 실린, 13살 소녀 최순애의 동시 ‘오빠생각’이다. KTX나 비행기, 고속버스를 타면 전국 어디서나 금방 서울에 가고 비단 구두가 아니라 가죽 구두가 넘쳐나는 현시대에 사는 청소년들이야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의아해 하겠지만 당시는 이처럼 너나할 것 없이 어려웠던 시대였다. 이 시는 작곡가 박태준에 의해 곡이 붙여지고 요즘말로 ‘국민동요’가 됐다. ■ '어린이' 잡지 동요 게재, 이원수 씨와의 특별한 인연 당시 최순애 씨는 수원면 북수리(현 수원시 북수동)에 살던 소녀였다. 9살 위의 오빠 최신복(최영주)은 수필과 동요 동시 등을 발표한 문인이기도 했지만 당시 일류 편집자이자 출판인으로서 소파 방정환의 뒤를 이어 출판을 통한 아동운동을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잡지 ‘박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최순애의 여동생 최영애도 일찍이 10살 나이로 어린이 잡지에 ‘꼬부랑할머니’가 실려 삼남매 모두 문재가 출중했음을 볼 수 있다. 어찌됐건 최순애의 ‘오빠생각’이 실린 어린이 잡지에는 15살 마산 소년의 이원수 작품도 실렸다. 잘 아시다 시피 이원수는 ‘고향의 봄’을 쓴 한국 아동문학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소년 이원수는 소녀 최순애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져 10여년 후 둘은 부부가 된다. 지난달 31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린 수원박물관 주최 ‘수원지역 근대문화예술인들의 삶과 활동’이란 학술심포지엄에 앞서 최순애-이원수 부부의 딸인 이영옥(1941년생, 오산시 거주) 씨와 이정옥(1945년생, 군포시 거주) 씨를 만났다. 두 분 다 이원수 선생을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이영옥 씨가 보여주는 오래전 가족사진을 보니 어머니 최순애 씨도 닮았다. ■ 부부가 된 '오빠생각' 최순애-'고향의 봄' 이원수 “저의 아버지(이원수)가 어머니(최순애)께 엄청 오랫동안 구애를 하셨나봐요. 어머니 집안에서 반대가 있었는데 결국 외삼촌(최영주) 등이 도와서 혼인이 성사된 것 같아요” “첫 만남은 수원역에서 갖기로 했대요.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어떤 색깔의 옷을 입고 손에 무엇을 들고 기다리겠다고 편지로 약속을 했는데 아버지가 ‘함안독서회 사건’으로 왜경에 체포 당하는 바람에 첫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답니다." “혼인식은 수원 어머니 집에서 했어요. 그런데 혼인식을 마치고 경상남도 시골 아버지 집으로 가보니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더래요. 쌀항아리가 겨우 물동이만하고 살림살이도 거의 없어서 소꿉장난하는 기분이었답니다” “어머니가 고생 참 많으셨어요.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경제 형편이 나아지질 않아서 어려움을 겪으셨어요.” 그러나 자매는 부모님을 추억하는 대화 내내 유쾌했다. 돈을 잘 벌지 못하는 아버지 이원수를 주변에서 ‘이 웬수’라고 놀렸다는 말을 하면서도 깔깔깔 웃었다. 가난으로 고생했지만 가정의 분위기가 주눅 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최순애 문학비 건립,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점심식사를 마치고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팔달산 기슭의 ‘고향의 봄’ 홍난파 노래비(우측사진)가 있음을 상기시키며 어머니 최순애의 ‘오빠생각’ 동요비, 또는 문학비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거참 좋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팔달산에 이원수와 홍난파가 글을 짓고 곡을 만든 노래비가 있는데 이 부근이나 최순애의 출생지인 북수동에 최순애 ‘오빠생각 문학비’를 세우면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봄’ 이원수와 ‘오빠생각’ 최순애의 러브스토리로 인해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영옥·정옥 씨 자매는 대환영이다. “아유, 영광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어머니와 아버지도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이미 문화계 일각에서는 최순애 '오빠생각' 동요비나 문학비 건립 얘기가 나오고 있다. 머지않아 수원에 ‘오빠생각’ 문학비가 세워지고 이원수-최순애의 러브스토리가 그 옆에 덧붙여져 영원히 전해지길 바란다. (인터뷰 기사=e수원뉴스 김우영 편집주간)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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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교민들의 '나의 살던 고향'... 붉어진 눈시울 2013.11.1 노컷뉴스
우즈벡 교민들의 '나의 살던 고향'... 붉어진 눈시울 삼성전자,우즈벡 한인 합창단 후원 고국 공연 2013-11-01 15:00 CBS노컷뉴스 조백근 대기자 삼성전자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합창단의 한국 방문을 후원해 이들의 고국 공연을 성사시켰다. 삼성전자는 1일 경기도 용인 문예회관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거주지 '이크마을' 한인 합창단 '천지꽃'의 고국 방문공연을 후원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프렌드아시아(국제개발협력 NGO)와 함께 중앙아시아 동포들을 지원하는 '한민족 愛 희망나누기' 사업을 진행해 왔고 이번 공연도 해당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했다. 우즈베키스탄 이주 한인 2세대로 이루어진 '천지꽃 합창단'은 총 25명으로 구성된 평균연령 77세의 합창단으로 지난달 28일 난생 처음 고국을 방문,부모에게 말로만 듣던 본가를 방문하는 등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꿈에 그리던 고국 공연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나의 살던 고향'을 주제로 열린 이번 공연에는 '아리랑','고향의 봄' 등 다양한 우리 노래가 울려 퍼졌으며, 공연장을 찾은 500여 명의 지역 주민들과 삼성전자 임직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천지꽃 합창단' 단원 림바 유(69) 할머니는 "한복을 입고 그 동안 연습한 우리의 노래를 고국의 동포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었다"며 "먼 곳에서도 나의 뿌리를 잊지 않고 우리 민족의 전통을 후손에게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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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북새 - 제주일보 2013.11.7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동요 '오빠생각'이다. 1925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발행하던 잡지 ‘어린이’ 지면에 실렸던 13세 소녀의 작품으로, 당시 유명 작곡가였던 박태준씨가 곡을 붙였다. 남녘의 먼 나라에서 왔다가 떠나가는 뜸북새에서 ‘서울 가신 오빠’를 떠올리며 노래한 것으로,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를 지나면서 요즘 말로 국민동요가 되었다. 13세 소녀는 경기도 수원 출신인 최순애씨다. 훗날 아동문학가가 된 최씨의 남편은 ‘고향의 봄’으로 유명한 이원수씨다. 잡지 어린이에는 당시 15살 소년 마산 출신인 이원수씨의 작품도 실렸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소년은 소녀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져 10여 년 후에 부부가 됐다. ▲뜸북새는 육지부에선 1970년대만 해도 흔한 여름 철새다. 농약 살포 등으로 서식환경이 나빠지고 정력제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아 불법 포획이 성행하면서 10여 년 전부터 개체 수가 급감했다. 지금은 국내에서 멸종위기에 처해 환경부 멸종위기종 2급과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446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서식하면서 여름에는 우리나라로 날아와 3~5개의 알을 낳는다. 주로 논에서 생활하면서 곤충이나 달팽이를 잡아먹고 사는 관계로 논이 흔하지 않은 제주에선 낯설다. 제주대학교 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가 최근 제주시 용담동에서 상처를 입은 암컷 뜸북새 한 마리를 응급구조해 보호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2004년 여름 제주시 한경면 습지에서 수컷 뜸북새의 울음소리가 확인된 기록은 있지만 실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에서 그림으로나 보던 터라 반갑다. 구조 당시 다리 골절과 근육 손상이 심해 자연 복귀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스스로 걸어 다닐 정도로 회복됐다. ▲뜸북새는 중년에게도 애절함을 주는가 보다. “아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잊어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들녘에 피고 있는 임자 없는 들국화/바람도 살랑 살랑 맴을 돕니다”(고복수의 ‘짝사랑’) 진객(珍客) 덕분에 가을이 제대로 물드고 있다. 고동수 서귀포지사장 esook@jejunews.com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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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찾은 '고향의 봄' 이원수문학관 / 경남이야기 2013년 3월 8일
봄날에 찾은 `고향의 봄` 이원수 문학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은 불러봤던 동요이다. 이 동요는 홍난파가 작곡하고 이원수가 작사한 ‘고향의 봄’이다.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선생은 경남 창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15살에 고향의 봄 노랫말을 적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향의 봄 노랫말의 배경이 경남 창원이라고 한다. 우리 고장의 대표 문학인이며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선생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이원수 문학관을 찾았다. '고향의 봄'을 작사한 고 이원수 선생. 경남 창원 팔용동에 위치한 고향의 봄 도서관 지하1층에는 이원수 문학관이 있다. 도서관 지하 1층에 들어서면 먼저 벽면에 이원수 선생이 살아생전 모습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이원수 문학관으로 들어서면 이원수 선생의 일대기와 유품, 이원수 선생의 작품과 고전서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이원수 선생의 소박한 모습을 닮은 듯하다. 전시관은 친절하게도 바닥에 관람 방향표시 화살표가 있다. 그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면 맨 처음 연도별로 이원수 선생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고향의 봄 도서관의 이원수 문학관 입구. 이원수 선생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들. 호가 동원인 이원수 선생은 1911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린 시절 고향의 봄의 배경이 되는 경남 창원읍(현재 창원 소답동)으로 이사를 와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여기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고향의 봄의 배경지가 이원수 선생의 고향이었던 경남 양산이냐 아님 유년시절을 보낸 경남 창원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창원시청에서 이원수 선생이 생후 10개월에 창원으로 이사를 온 내용이 적힌 호적부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책자에 실린 이원수 선생의 자전회고록에 ‘양산에서 태어났지만 1년도 못되어 창원으로 와서 고향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는 내용이 있어 경남 창원이 고향의 봄의 배경지로 확인되어졌다. 이원수 선생의 일대기가 전시된 공간. 이원수 선생의 호적부. 그리고 전시관에는 이원수 선생이 사용하였던 만년필, 파이프 담배, 돋보기, 안경, 수첩 등 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돌아가시기 전까지 쓰셨던 수첩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있어 문인으로의 면모가 엿보인다. 이원수 선생의 유품. 이원수 선생의 부인은 동요 을 쓴 최순애 선생이다. 이원수, 최순애 부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인 부부이기도 하다. 아내 최순애 선생도 아동문학인이다. 이원수 선생 유품 전시관 옆에는 아내 최순애 선생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유품전시물을 지나 좌측으로 돌아가면 이원수 선생의 저서와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1950~1970년대에 발간된 도서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도서자료들은 한국 아동문학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이원수 선생의 저서들. 그리고 전시관 메인에는 2011년에 이원수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원수 선생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 흉상 뒤에는 고향의 봄 노랫말의 배경지인 조각가 김종영 생가의 사진이 멋지게 어우러져있다.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 흉상. 전시관을 둘러보며 새롭게 안 사실은 일본과 중국 연변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고향의 봄의 노래가 실린 것이며 더더욱 놀라운 것은 북한 성인이 보는 가요책에 고향의 봄이 실린 것이다. 그만큼 고향의 봄은 전세계 우리 민족의 마음을 달래주는 민족 정서가 담긴 노래인 것 같다. 일본, 중국, 북한 등 고향의 봄 노래가 실린 책들. 이원수 문학관은 많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 문학기행을 하고 있다. 이원수 생가와 김종영 생가, 창원읍성 등 고향의 봄 배경지인 창원 소답동과 고향의 봄 창작터, 이원수 선생 모교, 신혼살림집 등 마산합포구를 다니며 이원수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그리고 다음달 4월 14일에 창원북면온천 야외공연장에서 고향의 봄 창작 87주년 기념공연을 한다. 이 기념공연은 고향의 봄 창작 80주년부터 시작하여 올해 7회째를 맞고 있다. 이 날은 어린이 스타킹 경연대회, 축하공연과 고향의 봄 주머니 만들기, 어린이 벼룩시장, 종이가방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열린다. 그 외 문학관에서는 독서교실, 문학교실, 이원수동화사랑모임, 소식지 꽃대궐 발간 등 행사가 있다. 이원수 문학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소개한 게시판. 이원수 문학관 내부 모습. 이원수 선생은 평생 어린이들을 위해 동시, 동화, 소년소설, 아동평론 등 10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 평생 어린이들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쉬운 오점이 하나 있다. 시대적 혼란 속에 살아온 그였기에 그 또한 잠깐의 방황이 있었다. 일제 말기 함안금융조합 재직 시 기관지에 친일시를 몇 편 남긴 거였다. 그러나 그 당시 정황을 보면 신변적인 압박이나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친일시를 적은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 잘못에 대해 이원수 선생은 1980년에 잘못을 인정하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고 전시관에도 친일작품에 대한 내용도 볼 수 있다. 이원수 문학관에는 선생의 친일작품에 대한 내용도 소개되어 있다. 이원수 문학관이 있는 고향의 봄 도서관 전경. 그렇다고 이원수 선생이 완전 친일파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린이들을 위해 살아온 그의 업적이 너무 크다. 전 세계의 우리 민족이 고향의 봄을 부르며 대한민국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이원수 선생의 오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형도 명예기자 기사등록일자 [2013/03/08 09:16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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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아이랑 같이 읽어요" [연합뉴스 2013-02-21]
아빠와 아이가 함께 읽을만한 책들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요즘 '친구 같은' 아빠가 대세다.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는 것도 좋지만 이번 주말에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함께 읽는 것은 어떨까. 아빠와 아이가 함께 읽을만한 책들이 나왔다. '으랏차차! 씨름'(여우고개 펴냄)은 아빠와 아이가 함께 보며 따라 하면 신날 그림책이다. 그림책 속 주인공인 아이는 아빠와 함께 놀고 싶지만, 아빠는 텔레비전만 본다. 아이는 씨름하자며 아빠를 졸라대고, 아빠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씨름을 하는데…. 그림책처럼 아이와 살을 맞대며 씨름 한 판을 하거나, 아니면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며 우리 전통 놀이인 씨름을 설명해주면 아이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아빠와 씨름하는 그림책 속 아이의 모습이 귀엽다. 4-7세 아동용으로 나온 '컴퓨터 속으로 들어간 도깨비'(북갤러리 펴냄)는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위한 동화다. 아이에게 무작정 게임을 '하지 마라'고 할 것이 아니라 왜 오랫동안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에 매달리면 안되는지 도깨비들이 나오는 재미난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한다. 컴퓨터 게임을 오래 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인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의 단편동화집 '별 아기의 여행'(햇살어린이 펴냄)도 출간됐다. 이원수 문학을 읽고 자란 부모들에게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지난 추억을, 아이들에겐 감동을 선사한다. 표제작인 '별 아기의 여행'을 비롯해 '손님 오는 날' '파란 구슬' 등 작가가 195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발표한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아이들은 궁금한 게 많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이들의 질문에 난감할 때도 많다. '촌수박사 달찬이'(비룡소 펴냄)는 가족, 친척 간의 촌수와 호칭을 알려주는 그림책이다. 달찬이는 자신보다 두 살이나 어린 순덕이 이모를 이모라고 부르기 싫다. 하지만 순덕이는 곧 죽어도 이모 대접을 받으려 한다. 어린 이모를 둔 달찬이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촌수와 가족 관계를 배울 수 있다. '우리 몸은 작은 우주야'(해와나무 펴냄)는 아이에게 우리 몸을 설명할 때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인체의 각 기관과 뼈, 근육의 구조 등을 단순히 해부학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인간의 삶과 연결해 보여준다. '아빠, 휴대폰이 없을 땐 어떻게 통화했어요?'(인카운터 펴냄)는 청소년용 과학기술 교양서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과학기술과 기기의 발전사를 아빠와 딸의 대화 형식으로 흥미롭고 쉽게 풀어준다. '아빠, 섬유가 강철보다 강하다고요?'도 함께 나왔다. yunzhen@yna.co.kr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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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몽실언니' '괭이부리말 아이들' [연합뉴스 2013-02-12]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 35권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국내 대표 아동문고인 창비아동문고의 주요 작품을 모은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가 나왔다. 1977년 이원수 동화집 '꼬마 옥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270권이 출간된 창비아동문고는 아동문학시장이 미약하던 1970년대부터 국내 아동문학계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아동문고다.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는 창비아동문고 가운데 지난 35년간 가장 사랑받은 장편동화 25권과 국내 아동문학평론가들이 뽑은 동화집 10권 등 모두 35권으로 구성돼 있다. 동화집 10권에는 국내 창작동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마해송부터 현덕, 이원수, 권정생, 정채봉, 채인선, 박기범, 이현, 주목받는 신예 김민령과 송미경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가 50명이 창비아동문고를 통해 선보인 단편 동화 81편을 담았다. 동화집 10권을 엮은 원종찬 인하대 교수와 아동문학평론가 박숙경 씨는 간행사를 통해 "창비아동문고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오늘의 어린이들이 꼭 읽어야 할 작품을 선별하면서 특히 우리 아동문학의 지형도를 바꿔온 작가들의 작품이 빠지지 않도록 안배했다"고 밝혔다. 장편동화 25권은 창비의 어린이 문학상인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과 기관 및 단체의 추천·권장 도서를 중심으로 선정했다. 부모를 잃고 6·25 전쟁통에 동생을 업어 키우며 꿋꿋하게 삶을 헤쳐나간 몽실이의 이야기로 독자들의 가슴을 울린 권정생의 '몽실 언니', 베스트셀러 동화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황선미의 판타지 동화 '샘마을 몽당깨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김남중의 '기찻길 옆 동네', 김기정의 '해를 삼킨 아이들' 등이 주요 작품이다. 창비는 12일 "독자들이 편하게 사서 읽을 만한 단행본이 거의 없고 출판시장 자체도 미약하던 시절, 창비아동문고의 출범은 우리나라 창작동화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국내 어린이문학이 출판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하나의 사건이었다"면서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는 우리 어린이 문학의 결정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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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유물전시관 유물기증 잇따라 [뉴스웨이 2013-02-11]
[뉴스웨이 경남 강우권 기자] 양산시는 오는 4월 11일 개관을 앞두고 있는 양산유물전시관이 1종 종합박물관 등록 및 최첨단 수장시설을 갖춤에 따라 지역 문화발전에 뜻 있는 여러 유물소장가로부터 유물기증이 속속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여러 유물기증 접수 사례 중 2013년 1월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진용신제 전승보유자이며, 지역의 대표적인 유림이신 김진규 선생은 147점의 귀중한 조선시대 고문서를 유물전시관에 기증했다. 김진규 선생의 기증 고문서는 주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로 사서오경 등 과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용이하게 요약한 책들과 여러 문집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기증품 중 양산향안은 과거 조선시대 양산지역 향반들의 명단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 책으로 지역 향리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사료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고향의 봄’으로 잘 알려진 아동문학의 거목 고(故) 이원수 선생의 둘째딸 이정옥 여사는 선생께서 생전 친필로 작성하신 동시 원고와 담배파이프를 기증하였으며, 개관전에 이원수 선생의 미공개 서한 및 관련 작품이 공개될 수 있도록 대여를 허락했다. 이로 인해 이원수 선생과 함께 교류했던 작가들이 남긴 이원수 선생의 초상화, 미당 서정주 선생의 헌시 등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다양한 시각에서 이원수 선생의 작품세계를 연구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여 한국아동문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작품을 기증하신 이정옥 여사는 “선친의 고향인 양산 북정동에 유물전시관이 건립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기증품들이 잘 보존, 전시되길 바라고 이를 통해 미력하나마 양산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길 기원한다.” 고 말했다. 이밖에 대한제국시절 양산인의 삶을 흥미롭게 확인할 수 있는 ‘대한제국양산군호적표’(부산 거주, 황구화 선생 기증) 등 여러 양산 관련 유물들의 유물기증 의향들이 속속 접수되고 있다. 이에 양산유물전시관 관계자는 유물을 기증하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개관식 때 감사패 전달 및 기증자를 기릴 수 있는 명예의 전당을 신설하여 기증자의 이름을 영구히 일반 시민에게 소개할 예정이며, 기증유물들을 선별하여 개관 전에 공개함은 물론 유물들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기증유물 특별전도 추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산유물전시관 유물 기증?기탁에 관심 있으신 분이나 안내를 받고자 하시는 분은 양산유물전시관(055-392-3311~5)으로 문의하면 관련 행정절차 등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뉴스웨이) pressdot@newsway.kr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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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잇는 유물 기증…양산 박물관을 채우다 [국제신문 2013-02-11]
줄 잇는 유물 기증…양산 박물관을 채우다 개관 앞두고 기증 신청 이어져…조선시대 고문서 147점 등 - 박물관 "기증유물 특별전 고려" 오는 4월 11일 개관을 앞두고 있는 경남 양산유물전시관에 뜻있는 유물소장가의 유물기증이 속속 접수되고 있다. 양산유물전시관은 지난해부터 유물기증 홍보에 나선 결과, 모두 500여 점의 유물이 접수됐다고 11일 밝혔다. 가야진용신제(경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 전승보유자인 김진규 씨는 지난달 147점의 조선 시대 고문서를 유물전시관에 기증했다. 사서오경 등 과거시험을 위한 요약집과 여러 문집들이다. 이 가운데 '양산향안(梁山鄕案)'은 조선시대 양산지역 향반들의 명단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 책으로 지역 향리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사료여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고향의 봄' 작사자인 이원수 선생의 둘째 딸 이정옥 여사는 부친이 친필로 작성한 동시 원고와 담배 파이프를 기증했다. 또 개관 전에 이원수 선생의 미공개 서한 및 관련 작품이 공개될 수 있도록 대여를 허락했다. 이 여사는 "선친의 고향인 양산 북정동에 유물전시관이 건립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기증품들이 잘 보존, 전시되길 바라고 이를 통해 미력하나마 양산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길 기원한다" 고 말했다. 이밖에 대한제국시절 양산인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대한제국 양산군 호적표'(부산 거주 황구화 씨 기증) 등 양산과 관련된 유물들의 기증 의향이 잇따르고 있다. 양산유물전시관 관계자는 "유물기증자에 대해 감사의 의미로 개관식 때 감사패를 전달하고 기증자를 기릴 수 있는 명예의 전당을 신설해 시민에게 소개할 예정"이라며 "기증유물을 선별해 개관 전 공개는 물론, 특별전도 앞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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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도서관, 동요 ‘고향의 봄’ 작가 이원수문학관 탐방 , 대구도깨비신문 2013넌 1월 28일
서부도서관, 동요 ‘고향의 봄’ 작가 이원수문학관 탐방 대구서부도서관은 ‘체험중심의 향토문학관 운영’의 일환으로 지난 24일 대구 서구지역 아동센터에 다니는 아동 및 부모님 30여명과 함께 경남 창원의 이원수문학관으로 향토문학 체험활동을 다녀왔다. 이번 이원수문학관으로 가는 탐방길에서는 향토문인 우남희 작가가 이원수선생님에 대한 삶과 작품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재미있는 퀴즈, 동요 ‘고향의 봄’을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경남 창원시 ‘고향의봄도서관’내에 위치한 이원수문학관에서 이원수선생님을 소개한 영상물 관람, ‘고향의봄기념사업회’ 장진화 선생님으로부터 이원수선생님의 삶과 일화, 작품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과 더불어 이원수선생님 퍼즐로 알아보기, 동요 ‘고향의 봄 책칼피‘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부모님은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어린이들에겐 더욱 쉽고 친근하게 이원수선생님의 삶과 문학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부도서관 이병문관장은 ″앞으로 문학체험활동을 더욱 다양하고 내실 있게 실시해 지역주민에게 문화향유의 기회와 다양한 체험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향토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창의적 체험활동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손중모 기자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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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 동시 퀼트로 만난다, 경남신문 2013년 1월 18일
이원수 동시 퀼트로 만난다 고향의봄사업회 ‘퀼트 시그림전’ 이달 말까지 창원 이원수문학관 ‘고향의 봄’ 등 대표 동시 10편 2013-01-18 한국아동문학의 거목 이원수 선생의 대표 동시가 퀼트로 꾸며져 전시되고 있다.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회장 김일태)는 이원수동화사랑모임 꽃대궐 회원들과 함께 이원수 선생의 대표 동시를 퀼트로 꾸며 지난 11일부터 창원시 의창구 서상동에 있는 이원수문학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전시기간은 이달 말까지. 이들은 겨울방학을 맞아 어린이들에게 동시를 색다르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고향의 봄’, ‘겨울 물오리’ 등 이원수 대표 동시 10여 편을 골라 퀼트로 꾸민 시그림전을 마련했다. 종이나 도자기에 물감으로 꾸미거나 현수막 등에 꾸민 시그림들도 아름답지만, 퀼트 천 위에 색색의 실로 한 땀 한 땀 표현한 시그림은 따뜻함과 정감을 더욱 더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퀼트(quilt)는 수예기법의 하나로 이불이나 쿠션 등에 누비질을 하여 무늬를 두드러지게 만든 것을 말한다. 천과 천 사이에 깃털, 양모, 솜 같은 부드러운 심을 채워 넣어 만들며 조각퀼트, 아플리케퀼트, 코트퀼트 등이 있다. 서지영 꽃대궐 회장은 “이원수 선생의 동시를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수놓으면서 시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퀼트로 꾸민 시그림 작품들을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따뜻한 동심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원수동화사랑모임 꽃대궐은 이원수문학관에서 매주 아동문학과 이원수 작품을 공부하는 지역 주부들의 모임으로 이원수문학관을 찾는 어린이들을 위해 아동극 ‘도깨비마을’을 만들어 공연하고, 예쁜 글씨로 꾸민 시그림을 만들어 전시하기도 했다. 이상규 기자 sklee@knnews.co.kr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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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시, 전시실 나들이 (2013.01.06 경남도민일보)
책 안에 있었던 '시'가 전시실로 외출을 나갔다. 이원수문학관과 갤러리 필에서 이원수, 정일근 시인의 작품이 31일까지 전시된다. ◇퀼트로 만든 시 =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회장 김일태)와 이원수동화사랑모임 '꽃대궐' 회원들은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를 위해 특별한 전시를 마련했다. 이원수 시인의 '고향의 봄', '겨울 물오리' 등 작품 10여 점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퀼트로 만든 것. 인쇄된 책 속 활자가 형형색색으로 재탄생돼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천 조각을 덧대어 그림을 수놓았는데, 시 내용과 찰떡궁합이다. 꽃대궐 서지영 회장은 "이원수 선생의 동시를 퀼트로 만들면서 시 구절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퀼트로 꾸민 시 그림 작품을 보고 따뜻한 동심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의 055-294-7285. ◇손으로 쓴 시 =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 원장)은 불교를 소재로 한 육필(肉筆) 시(사진) 24점을 선보인다. 손으로 쓴 글씨가 사라져가는 요즘, 육필 시 전시는 신선하다. 육필 예찬론자인 정 시인은 "육필은 느림의 운동이요, 시의 위의(威儀)를 되찾아가는 시인의 일이기도 하다"고 이유를 말했다. 전시에서는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김일태, 김혜연, 박서영 등 창원지역 시인과 권수진, 김경식, 이재성 등 경남대 아카데미 출신 시인의 육필 시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서예가 윤판기가 정 시인의 작품을 붓글씨로 쓴 10폭 병풍 2점도 전시된다. 작가와 만남은 26일 오후 2시로 예정돼 있다. 문의 055-274-8813.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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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한동민"나혜석, 어찌할 것인가?" (2013.01.08 경기신문)
지난 연말 수원문화재단에서 올해의 수원문화예술인으로 화가이자 문학가인 나혜석(羅蕙錫·1896~1948)을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아버지 나기정이 친일파라며 인물선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더 나아가 나혜석이 당시에 혁신적이고 여성사적으로 선구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한 점이나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수원 하면 화성(華城) 등 조선 정조시대의 문화가 중심’이라는 시각의 편협함이었다. 수원은 화성만이 있는 곳이 아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수원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인물을 선정하는 것을 ‘뜬금없는 일’로 치부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원은 경기남부의 중심지로서 오랜 역사와 인물을 자랑하고 있다. 수원은 200년 전 정조 때 축성한 화성만으로 특정될 수 없는 도시다. 그때가 가장 빛난 것은 사실이지만 전후에도 한국을 빛낸 숱한 인물들의 땅이기도 하다. 그들에 대한 평가의 오호를 떠나서 수원을 빛냈던 사람들이 많다. 음악의 홍난파와 미술의 나혜석, 문학의 홍사용과 박팔양, 박승극, 최순애 등등. 한국의 근대를 빛낸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고향의 봄의 작곡가 홍난파는 친일의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박팔양과 박승극은 월북으로 인해 남녘땅에서 잊힌 사람들이다. 그나마 아동문학가 이원수와 결혼한 민족의 심금을 울린 동시 ‘오빠생각’의 주인공 최순애조차 우리는 수원사람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가운데 동탄에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유일하게 건립되어 그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수원을 비롯하여 근대 한국을 나름 볼품 있게 만들었던 그들에 대한 빈약한 우리의 기억은 친일과 용공이라는 덫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이러한 이중의 덫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인 나혜석조차 아버지 나기정을 친일파로 하여 매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나기정(羅基貞·1863~1915)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 군수(郡守)를 지낸 사람은 친일파로 인정하여 사전에 등재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지극히 엄정한 잣대였다. 그러나 사전의 나기정에 대한 서술은 간단하다. “합병 후, 1910년 10월 시흥군수에 유임되었다. 이어 1912년 3월 경기도 용인군수로 부임해 1914년 2월까지 재직했다.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이것이 친일의 내용이다. 그러나 그는 대한제국 때부터 관료였는데, 1909년 시흥군수가 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당시에도 시흥군수였다. 그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나라가 망할 때 자결하거나 관직을 스스로 던져 벗어버리지 못한 것이다. 이를 탓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퇴직을 앞두고 그 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1913년 ‘한일병합기념장’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기정은 1908년 수원의 국채보상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였고, 자강운동의 일환으로 학교설립 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삼일학교 등에 상당한 기부를 한 인물이다. 또한 북문 밖에 뽕나무를 심어 수원지역 최초의 양잠을 장려한 인물 역시 그였다. 나기정은 친일파라기보다 합리적인 관료에 불과하였다. 나기정은 재평가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나혜석을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엄정한 평가의 자유도 포함된다. 합리적 문제제기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나혜석의 기념’과 ‘나혜석의 독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혜석과 그의 작품을 보다 깊이 연구하고 평가하는 게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유화가이자 걸출한 문학가이며, 독립운동을 도왔고 여성해방론자였던 자유로운 영혼의 신여성. 그 다양한 수식어만큼 풍부한 문화콘텐츠를 갖춘 인물, 나혜석을 능가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있단 말인가? 수원은 화성과 정조와 함께 보다 친근한 근대의 사람들을 콘텐츠로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공장이 없는 수원, 역사문화의 도시 수원이 갈 길이다. 나혜석을 우리는 어찌 할 것인가? <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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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와 한국음악 <28> <고향의 봄>과 동요(童謠)의 시대 (2013.01.03 ARTS NEWS)
과 동요(童謠)의 시대 창가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며 신식 노래의 대명사로 불리어지던 1920년대, 이 땅에는 ‘동요(童謠)’라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 막을 연 최초의 작품이 1924년 발표된 윤극영(尹克榮)의 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박태준(朴泰俊)①이라는 걸출한 동요작곡가가 있었지만, 을 동요의 효시로 보는 것은 윤극영이 1926년 최초의 동요작곡집 『반달』을 발표하면서 동요의 진정한 태동기를 열었기 때문이다. 동요란 어린이의 정서를 표현한 시에 가락을 붙인 노래라고 정의할 수가 있겠는데, 창가와 일본노래가 범람하던 당시로서는 단지 어린이를 위한 노래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동요는 일본 창가를 대신할 민족 음악교육의 필요성에서 탄생했고, 조선인의 음악적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민족의 노래가 절실했던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일종의 ‘음악 문화운동’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최초의 동요인 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거라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민족적 비운과 설움을 그린 이 노래는 짧은 시간에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 국민적 애창곡으로 불려졌다. 조선의 ‘반달’은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하늘을 떠다니지만,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는 ‘샛별’이 있다. 그 등대를 의지해서 길을 찾아가라는 희망의 메시지는 이 동요의 영역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노래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은 2박자 계열의 일반 동요와는 달리 3박자 계열의 8분의 6박자를 사용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점이다. 여기에 때마침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했다는 점도 태동기 동요의 전파에 날개를 달아준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윤극영은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홍난파보다 3년 늦게 동경음악학교에 입학해서 작곡과 성악을 전공했다. 법학을 포기하고 유학길에 오른 그는 도쿄에서 홍난파와 방정환(方定煥)을 만나 음악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특히 방정환 등과 1923년 ‘색동회’②를 조직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음악과 문화운동에 평생을 바치게 된다. 그리고 이 운동의 중심 매체가 그해 방정환에 의해 창간된 아동잡지 『어린이』였다. 『어린이』는 이후 한국 아동문학과 창작동요의 메카로서 더 없이 소중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윤극영의 이 발표된 것도 이 잡지를 통해서였고, 홍난파의 이 세상에 나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바로 잡지 『어린이』를 통해서였다. 1926년 4월호 『어린이』에는 동요 입선작이 발표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당시 마산의 성호보통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원수(李元壽)의 작품 이었다. 당시 15세였던 이원수는 소년회 활동을 통해 어린이운동의 선구자 방정환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이 잡지에 원고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당선작으로 소개가 되었던 것이다. 경남 양산(梁山)에서 태어난 이원수는 곧 창원(昌原)으로 이사를 해서,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창원은 인근 마산(馬山)에 비해서는 작고 초라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성문 밖 개울이며 서당 마을의 꽃들이며, 냇가의 수양버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가 아름답게 펼쳐진 ‘꽃대궐 동네’였다.③ 15살 소년은 어린 시절 ‘꽃피는 산골’에 대한 추억과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에서 놀던 때를 그리워하며 이 시를 썼던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홍난파가 『어린이』에 실린 을 보고 작곡을 한 것은 그 이듬해인 1927년 10월의 일이었다. 당시 동경고등음악학원에서 유학 중이던 난파는 창작동요의 작곡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이 곡 외에도 이때부터 등 수많은 동요를 작곡하는데, 이는 1920년대에 가장 많은 동요를 작곡한 사람 중의 한 명이 홍난파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가 있다. 은 그가 귀국한 후 발행한 『조선동요백곡집』에 수록되면서 한국인의 향수와 동심을 대표하는 노래로서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특히 나중에 음반으로도 제작 발매된 은, 1936년이 되면 ‘ 소년소녀현상동요대회’의 지정곡으로 선정될 정도로 창작동요의 대명사로 널리 불리어졌다. 동요는 1930년대에 들어오면 수많은 명작(名作) 동요가 앞을 다투어 발표되면서 그야말로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이 속에는 홍난파는 물론이고 의 이흥렬(李興烈), 의 현제명(玄濟明), 그리고 1200개나 되는 동시(童詩)를 발표하고 그 가운데 800여 개가 동요로 만들어지는 윤석중(尹石重)의 업적도 빼놓을 수가 없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① 작곡가(1900~1986). 대표작으로 등이 있는데, 1929년 자신의 창작동요집 『중중 때때중』을 통해 발표했다. ② 1923년 3월 16일 발족한 한국 최초의 어린이 문화운동단체. 이 해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5월 1일을 ‘ 어린이날’로 제정했다. 초대회장은 방정환이었고, 윤극영은 제3대 회장을 지냈다. ③ 이원수 「 자전회고록-흘러가는 세월 속에」 1980년 10월호.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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